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블로거는 기억을 남긴다. 기억은 기록이 된다. 기록은 역사가 된다. 이곳에 올려진 광고와 홍보 내용은 모두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Since 2009.04.04 밝은터
« 2010/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Google Book Search

www.flickr.com
This is a Flickr badge showing public photos and videos from ICCsports 사진 업데이트 중. Make your own badge here.

믹시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믹시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해주셔요.

르브론 제임스 히트 행의 의미는

BK Column | 2010/07/08 21:25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르브론 제임스가 마이애미 히트 행을 결정했고 이는 NBA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는 8(이하 미국 동부 기준) ESPN-TV 특집 쇼를 통해 히트 행을 발표했다. 마이애미 팬들은 이날 오후 6TV 보면서 환호했고 클리블랜드 팬들은 절망했다. 장면은 ESPN 통해 전국으로 방송됐다.

July 08, 2010 - Greenwich, CONNECTICUT, United States - epa02241974 Handout photo from ESPN showing LaBron James (L), NBA's reigning two-time MVP, as he ends months of speculation and announces 08 July 2010 on ESPN 'The Decision' in Greenwich, Connecticut, USA, that he will go to the Miami Heat where he will play basketball next 2010-11 season. James said his decision was based on the fact that he wanted to play with Dwyane Wade and Chris Bosh.
ESPN과의 인터뷰에서 히트 행을 발표하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 (사진=PicApp)

제임스의 히트 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일단 히트는 2011 NBA 챔피언 결정전 출전이 유력하다. 히트는 비시즌에 크리스 보쉬와 제임스를 영입해 드웨인 웨이드와 3’ 결정하도록 했다. 보스턴 셀틱스의 3보다 화력이 있어 보인다.

크리스 보쉬(Christopher Wesson Bosh) / 농구선수
출생 1984년 03월 32일
신체 키208cm, 체중107kg
팬카페
상세보기
드웨인 웨이드(Dwyane Tyrone Wade) / 농구선수
출생 1982년 01월 11일
신체 키193cm, 체중96kg
팬카페
상세보기

르브론 제임스(LeBron Raymone James) / 농구선수
출생 1984년 12월 23일
신체 키203cm, 체중113kg
팬카페
상세보기

히트 3’ 특징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제임스는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을 많이 받은 선수이고 웨이드와 보쉬도 팀을 위해서라면 에고(ego)’ 집에 던져놓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선수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화려한 플레이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셀틱스의 3 다른 점은 훨씬 젊다는 있다. 앞으로 오랫동안 NBA에서 군림할 조짐이 보인다.  

NBA 전문가들은 히트가 당장 챔피언이 없다고 평가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가능성이 크다. 히트의 문제는 3 주변에 어떤 선수로 채울 것인가인데 사실 문제도 비시즌 중에 쉽게 해결될 것이다. 베테랑 선수들이 샐러리캡 예외 조항을 타고 히트 유니폼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레이더 망에 걸려 있는 선수는 앨런 아이버슨이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3 도울 있는 베테랑들이 히트로 몰려들면 히트는 막강 전력을 구축하게 된다.

히트의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 등극은 3 부상만 없다면 너무나 쉽게 예상할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이 가능성이 3 연속 NBA 챔피언 등극을 노리는 LA 레이커스는 어떨까. 레이커스는 역시 히트의 가장 걸림돌이다. 코비 브라이언트, 파우 가솔, 앤드류 바이넘, 라마 오덤, 데릭 피셔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화려하다. 여기에 비시즌 중에 스티브 블레이크를 영입해 가드진을 가다듬은 레이커스는 마이크 밀러와 같은 3점슈터의 영입을 노리고 있다. 피셔와의 계약이 마무리지어지지 않았지만 코비가 피셔는 우승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동료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미치 컵첵 레이커스 단장은 조만간 계약소식을 전할 것이다.

June 21, 2010 - Los Angeles, CALIFORNIA, United States - epa02215235 Los Angeles Lakers player Kobe Bryant (L) looks out at fans with his wife and daughters (R), during the Lakers Victory Parade in Los Angeles, California, USA, 21 June 2010. The Lakers defeated the Boston Celtics to claim their second consecutive NBA championship title. Over 500,000 fans lined Figueroa Street as the Lakers players road in flat-bed vehicles through downtown Los Angeles.

히트와 레이커스가 결승에서 맞붙는다면? 조심스럽게 히트의 승리를 예상해 본다. 레이커스의 팀워크도 최상이지만 히트의 워크는 기대 이상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웨이드, 보쉬, 제임스는 절친이고 성품도 하나같이 팀을 위해서라면 내가 손해보는스타일이다. 당장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히트의 시대가 열렸다. 레이커스와의 라이벌 대결은 벌써 기대가 된다. 만약 레이커스가 샤킬 오닐을 베테랑 예외 조항으로 영입한다면 NBA 더욱 흥미로운 리그가 것이다.  [밝은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Bookmark and Share

TRACKBACK ADDRESS : http://iccsports.com/trackback/73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Zzapsiri 2010/07/09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론 초창기 히트를 엄청 좋아했었습니다. 글렌라이스, 스티브 스미스가 활약하던 시기... 승리는 좀 적었지만 젊고 패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히트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명의 해럴드 마이너가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 무지막지한 2단 백덩크에 뻑 가면서 부터였죠~ 이후에 한번 더 슬램덩크 왕좌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

    가드진 보단 포스트를 누가 지키느냐가 더 중요하다 생각이 들지만, 샤크와 웨이드 조합이후, 또 다시 왕좌를 차지할 수 있을지 올 시즌 기대가 됩니다. ^^

    • BlogIcon ICCsports 밝은터 2010/07/09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렌 라이스와 스티브 스미스는 저도
      좋아했던 선수들입니다.
      로니 사이컬리도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해럴드 마이너도 대단한 선수였죠.
      USC 시절에는 제2의 마이클 조던이 될 선수
      라는 칭찬을 받았는데 NBA에서 더 뜨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마이너는 대학 때 정말 잘 했는데...
      히트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댓글에 감사합니다.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해주셔요.

한국 축구 대표팀 역대 감독 명단

연재/축구와 문화 | 2010/07/05 11:21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http://www.kfa.or.kr/kfa_history/coach_list_01.asp

재임기간 감독 코치
2007년 12월 7일 ~ 2010년 6월 30일 (남아공 월드컵) 허정무 정해성
2006년7월 1일 ~ 2007년 8월 3일 베어벡 홍명보
2005년 10월 1일 ~ 2006년 6월 30일 (독일 월드컵) 아드보카트 베어벡
2004년 6월 24일 ~ 2005년 8월 23일 (아시안컵, 동아시아대회, 월드컵 예선)
본프레레 허정무
2004년 4월 20일 ~ 2004년 6월 15일 (파라과이, 터키전) 박성화(감독대행) -
2003년 2월 3일 ~ 2004년 4월 19일 (아시안컵 예선, 동아시아대회, 월드컵 예선)
쿠엘류 박성화
2002년 11월 18일 ~ 2002년 11월 20일 김호곤(감독대행) -
2001년 1월 1일 ~ 2002년 6월 30일 (2002 월드컵 본선) 히딩크 베어벡
98년 10월 14일 ~ 2000년 11월 13일 (2000 올림픽, 아시안컵) 허정무 정해성
98년 6월 22일 ~ 98년 6월 25일 (98 월드컵 벨기에전) 김평석(감독 대행) -
97년 1월 8일 ~ 98년 6월 21일 (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본선) 차범근 김평석
96년 2월 15일 ~ 97년 1월 7일 (UAE 4개국대회 및 96 아시안컵) 박종환 정해성(최만희)
95년 10월 20일 ~ 95년 10월 30일 (사우디 방한 경기) 고재욱 박경훈
95년 9월 16일 ~ 95년 9월 30일 (보카 주니어스 방한경기) 정병탁 조윤환
95년 8월 1일 ~ 95년 8월 12일 (브라질 방한 경기) 허정무 이장수
95년 4월 26일 ~ 95년 7월 31일 (95 코리아컵) 박종환 최만희
94년 7월 24일 ~ 95년 2월 26일 (94 아시안게임) 비쇼베츠 김성남
92년 7월 8일 ~ 94년 7월 23일 (92 다이너스티컵 및 94 미국 월드컵) 김 호 조광래
(유기흥,허정무)
91년 5월 22일 ~ 91년 7월 27일 (91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고재욱 허정무
90년 8월 9일 ~ 90년 10월 23일 (90 베이징 아시안게임) 박종환 김희태
90년 7월 3일 ~ 90년 8월 8일 (90 다이너스티컵) 이차만 김희태
88년 10월 6일 ~ 90년 7월 2일 (88 아시안컵, 90 월드컵 본선) 이회택 이차만
88년 7월 6일 ~ 88년 10월 5일 (88 올림픽 본선) 김정남 김호곤
86년 11월 20일 ~ 88년 7월 5일 (87, 88 대통령배 축구대회) 박종환 원흥재
85년 3월 19일 ~ 86년 11월 19일 (86 월드컵, 86 아시안게임) 김정남 김호곤
84년 7월 3일 ~ 85년 1월 11일 (84 아시안컵 및 86 월드컵 1차 예선) 문정식 김정남
83년 8월 23일 ~ 84년 7월 2일 (84 올림픽 예선) 박종환 이이우
83년 1월 29일 ~ 83년 8월 22일 (83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조윤옥 이세연
82년 10월 31일 ~ 83년 1월 28일 (82 아시안게임) 김정남 김호곤
82년 6월 19일 ~ 82년 10월 30일 (뉴욕 코스모스 방한 경기) 최은택 김정남
80년 5월4일 ~ 82년 6월18일 (80 아시안컵) 김정남 코치 체제 김호곤
(트레이너)
79년 3월 29일 ~ 80년 5월 3일 (80 올림픽 예선) 장경환 최은택
78년 3월 2일 ~ 79년 3월 28일 (78 아시안게임) 함흥철 김정남
77년 9월 17일 ~ 77년 12월 18일 (78 월드컵 예선) 김정남 코치 체제
-
77년 1월 1일 ~ 77년 9월 16일 (78 월드컵 예선) 최정민 김정남
76년 5월 14일 ~ 76년 12월 31일 (76 박스컵) 문정식 박경화
74년 11월 17일 ~ 76년 5월 13일 (76 올림픽 예선) 함흥철 김정남
74년 1월 ~ 74년 11월 17일 (74 아시안게임) 최영근 최은택
72년 12월 21일 ~ 73년 11월 20일 (74 월드컵 예선) 민병대 문정식
72년 6월 16일 ~ 72년 12월 20일 (72 메르데카, 박스컵) 함흥철 박경화
71년 12월 7일 ~ 72년 6월 15일 (72 아시안컵) 박병석 박상훈(박경화)
71년 11월 (71 킹스컵) 홍덕영 -
70년 2월 13일 ~ 71년 10월 6일 (72 올림픽 예선) 한홍기 우상권
69년 11월 ~ 69년 12월 (69 킹스컵) 강준영 -
69년 1월 ~ 69년 10월 (70 월드컵 예선) 김용식 강준영
68년 8월 ~ 68년 12월 (68 메르데카)
(67년 12월 ~ 68년 7월 : 팀 소집 없어 감독 부재 상태)
박일갑 -
67년 7월 ~ 67년 11월 (68 올림픽 예선) 장경환 박일갑
66년 6월 ~ 66년 12월 (* 실제 감독 역할은 한창화) 민병대
한창화
65년 8월 (* 실제 감독 역할은 정남식) (65 메르데카)
홍건표 정남식
64년 9월 (64 도쿄 올림픽) 정국진 김규환
62년 3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민병대
김규환
61년 10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62 월드컵 예선) 이종갑
김규환
61년 3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용식) 이유형
김용식
60년 10월 (* 실제 감독 역할은 김용식) (60 아시안컵 우승) 위혜덕 김용식
60년 3월 (60 올림픽 예선) 김용식 민병대
59년 7월 정국진 정남식
58년 4월 김근찬 민병대
56년 8월 (56 아시안컵 우승) 이유형
김성간
55년 12월 박정휘
주영광
54년 6월 (스위스 월드컵 본선) 김용식
-
54년 3월 (스위스 월드컵 예선) 이유형 배종호
52년 4월 ~ 54년 2월 김화집
이용일
48년 12월 ~ 50년 4월 박정휘 이유형
48년 6월 (48 런던 올림픽) 이영민 -
48년 5월 박정휘 -
[화제의 팀] 누가 막으랴 서울..
U-20 여자대표팀, 독일 월드컵..
허정무 감독, "대표팀 감독 계..
2010 WK리그 올스타전 화보
포토갤러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Bookmark and Share

TRACKBACK ADDRESS : http://iccsports.com/trackback/73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해주셔요.

대학농구 명장, 잔 우든(1910-2010) 잠들다

연재/UCLA | 2010/07/01 14:22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기사에 제 이름이 있어 소개합니다^^ 기사는 미주중앙일보 원용석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대학농구 명장, 잔 우든(1910-2010) 잠들다
[LA중앙일보]
UCLA에서만 27년간 10회 우승
학구적 자세와 검소한 생활로 모범
기사입력: 06.04.10 22:28
UCLA를 대학농구 명문으로 이끈 고 잔 우든이 지난 2005년 12월 애너하임에서 열린 '우든 클래식 농구대회'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던 장면이다. 흑백사진은 1969년 대학농구 3연패를 일군 후 시드니 윅스(오른쪽) 루 알신더와 기념 촬영한 모습.
농구뿐 아니라 스포츠계 최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잔 우든이 4일 9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6일 탈수증세로 UCLA 로널드 레이건 메디컬센터에 입원했던 전 UCLA 감독 우든이 자연사로 사망했다고 병원측이 밝혔다.

우든은 UCLA 브루인스를 10차례 우승으로 이끌며 대학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이너스티를 구축해 유명세를 얻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는 7년 연속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도 남겼다. 27년 동안 UCLA 지휘봉을 잡으며 통산 620승을 쌓아올렸고 이동안 88연승도 작성했다. 빌 월튼 커림 압둘 자바 모두 그의 손에서 배출된 수퍼스타들이다.

우든은 농구감독에 앞서 교육자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가 쓴 저서 '성공의 피라미드'는 스포츠뿐 아니라 비즈니스 업계의 교과서로도 통한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됐다. 지난 2008년 인터뷰 때 그는 장수의 비결에 대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인생에는 당연히 굴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점에 이르렀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최저점에 있다고 우울해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세상을 떠난 뒤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나'는 질문에 "잘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스포츠계의 대스타였음에도 근면하고 겸손한 생활을 유지했다. 나이키가 거액계약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에게 솔직한 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남을 도와라. 하루하루 매스터피스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우애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라. 좋은 책에 파묻혀라. 특히 성경을 읽을 것을 권한다. 삶을 살면서 복받은 것에 매일 감사하고 기도하라"라고 말했다.

본지에서는 박병기 전 중앙일보 기자가 1995년 한인언론으로 유일하게 그의 집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박 기자는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뒀음에도 너무나 소박하게 살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우든은 1910년 10월14일 인디애나주 마틴스빌에서 태어났다. 농구보다는 야구를 더 좋아한 우든이었지만 집 근처에 농구 림이 있어 농구에 푹 빠지게 됐다. 현역선수 시절에도 그는 최고였다. 1927년 마틴스 고교를 인디애나주 우승으로 이끌었고 퍼듀 대학에서 1930년부터 32년까지 올아메리칸에 선정됐다. 4학년 때는 퍼듀의 전국 우승을 이끌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우든은 UCLA 지휘봉을 잡으며 3만5천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우든의 제자들은 그가 무엇보다 기초와 기본을 중시한 인물이었다고 설명한다. 선수들에게 양말 신는 법부터 운동화 신는 법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가르쳤고 이를 실행하게 만들었다. 또 히피문화가 대학가를 몰아쳤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선수들에게 머리를 항상 단정히 하고 수염을 깎게 했다. 그는 "평판보다는 자신의 캐릭터를 쌓는 데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라"고 가르쳤다.

압둘자바는 "그는 감독보다는 부모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타적이었지만 규율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선수나 상대감독에게 한 번도 욕설을 한 적이 없었으나 심판을 향해서는 불만을 여러차례 터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든은 켄터키를 92-85로 꺾고 통산 10번째 우승을 거머쥔 뒤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우승 직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기자 200명이 그에게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던 일화도 있다. 우든은 자서전에서 1985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해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원래 고등학교 교사였던 우든은 우연찮게 UCLA 감독으로 임명됐다. 미네소타 대학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으나 학교 측에서 이후 연락이 없었다. 결국 UCLA에서 연락이 왔고 LA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미네소타 관계자들이 "눈보라가 몰아쳐 전화선에 이상이 있었다"고 해명했고 우든도 미네소타에 가고 싶어했으나 UCLA에 이미 언약을 했다며 거절했다.

우든이 이끈 UCLA는 파죽지세를 달렸다. 당시 서부 팀들은 느리고 셋업 공격을 좋아했지만 우든은 속공 위주의 빠른 팀을 만들었다. 또 풀코트 프레스를 선보여 대학농구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가 첫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16시즌이 걸렸다.

그가 가르친 선수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프로농구에 진출하지 않은 이들도 변호사 의사 목사 공무원 등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원이 됐다. 그는 농구감독으로 쌓은 기록보다 이 점이 더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원용석 기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연재 > UC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학농구 명장, 잔 우든(1910-2010) 잠들다  (0) 2010/07/01
UCLA 미국 최고의 스포츠 명문  (0) 2010/01/25
Bookmark and Share

TRACKBACK ADDRESS : http://iccsports.com/trackback/73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해주셔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홍명보 체제' 강추

연재/축구와 문화 | 2010/07/01 13:30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PORT ELIZABETH, June 27, 2010 Huh Jung-Moo, head coach of South Korea, reacts during the 2010 World Cup round of 16 soccer match against Uruguay at Nelson Mandela Bay stadium in Port Elizabeth, South Africa, on June 26, 2010. Uruguay won 2-1 and qualifies for the round of 8.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이 선택했다. 그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26개월의 대장정을 마쳤다. 그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 그가 계속 대표팀을 맡으면 잘해야 본전도 아닌 잘해도 손해가 것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원정 16 이상의 성적을 있는 이벤트도 없고 그에 버금가는 성적도 없을 것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나마 지금 박수를 치는 이가 많을 물러서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약체에 비기거나 패하는 일이 발생하면 허무 축구 외치는 자들이 기세등등할 것이다.

허정무 감독은 아쉬움은 남겼지만 한국적인 토양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있는 감독이었다. 현재의 월드컵팀이라면 누가 감독을 맡아도 16강은 확실히 것이라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유럽 빅리그 출신으로 23 명단을 짜게 나라들도 16 진출에 실패하거나 16강에서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국내 감독이 원정 16 진출을 인도한 것은 분명 좋은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아쉬운 결정이 차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수비 위주의 태세로 나선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그의 이번 월드컵에 대한 지도력은 한국 지도자로서는 최고 수준이었다고 있다. 다른 한국 지도자가 나섰더라면 이런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국내 감독 등용은 성공이었다고 있다. 포스트 히딩크 이후 한국은 이렇다할 감독을 영입하지 못했고 국제 무대에서 표류했다. 어느 누구도 만족스러운 외국인 감독은 없었다. 그런데 허정무 감독 영입이 대안이 됐고 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자꾸 외국인 감독을 다시 영입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의 성공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히딩크, 비엘사 급의 감독이 아니라면 외국인 감독은 영입하지 않는 것이 낫다.

CARSON, CA - FEBRUARY 8:  Former L.A. Galaxy player Hong Myung-Bo of the South Korean national team looks on prior to the international friendly match against Los Angeles Galaxy at Home Depot Center on February 8, 2006 in Carson, California. The South Korean defeated the Galaxy 3-0. (Photo by Victor Decolongon/Getty Images)

여러 한국인 감독이 거론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홍명보 감독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축구의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고 선수로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인물이다. 미국 프로축구, 일본 프로축구에서 활동해 글로벌 마인드도 있고 무엇보다 월드컵 출전 경험(4) 풍부해 무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다.

선수로서 능력도 뛰어났던 그는 공격과 수비를 너무나 이해한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기도 했고 수비수 미드필더로서 오랫동안 경험을 했다. 고려대학에서는 체육교육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너무 마음이 좋아 흥부라는 별명도 얻었다. ,,체를 갖춘 되는 지도자인 것이다. 2009 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18 만에 8강으로 인도한 그는 감독으로서도 합격점을 받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아시안게임과 2012 런던 올림픽은 23 이하 선수만 출전하고 나이 초과 선수는 와일드카드로 3명까지 지목할 있다. 이는 그가 2014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서 적임자가 있는 최고의 환경 여건이다. 4 후에 23 이하 선수들은 24-27세가 되어 대표팀의 주축이 것이고 와일드카드 선수들은 30 안팎이 것이다. 그들이 월드컵의 주역이 것이라는 말이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대표 선수들이 사실상 2014 월드컵 대표 선수들이라는 개념으로 팀을 운영한다면 그렇게 부담되는 일은 아닌 것이다.

4 동안 준비한 대표팀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보다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실리와 명분 모두에서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의 감독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른 감독이 맡았다가 물러나고 홍명보 감독이 중간에 들어오는 것보다는 지금부터 감독 체제 준비를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홍명보 감독은 2013년까지는 와일드카드 선수만 조절하면 되고 월드컵 1년을 앞두고는 월드컵에만 집중하면 된다.

홍명보 감독을 2014 브라질 월드컵 감독으로 임명하길 기대한다. 국내 축구 환경이 열악한 한국은 4 동안 준비할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팬들이 가지 숙지해야 것은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팀 감독이 된다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의 성적에 너무 민감해서는 된다는 것이다. 성적이 나오더라도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밝은터]

홍명보 감독 최근 인터뷰
http://www.kfa.or.kr/news/news_view.asp?tb_name=interview_gisa&g_idx=748&g_gubun=1


2009/10/07 - [BK Column] - 홍명보호가 마음에 드는 이유 5가지
2009/10/09 - [BK Column] - 홍명보호 옥에 티 (가나 전)
2010/06/26 - [연재/축구와 문화] - 2010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본 한국 축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Bookmark and Share

TRACKBACK ADDRESS : http://iccsports.com/trackback/729 관련글 쓰기

  1. 히딩크 감독님, 다시 한 번 대한민국!

    Tracked from ILoveCinemusic의 영화이야기 2010/07/03 04:16  삭제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전! 박주영의 골대를 맞고 나오는 프리킥과 정성룡이 흘린 골을 거저 주워 먹는 너무나 일찍 내어준 1실점, 주심의 석연찮은 판정 등으로 우리 선수들은 16강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만족해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저는 16강이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아마 태극전사들의 눈물도 그러한 의미가 내포 되어 있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다시 4년 후를 기약해야만 합니다. 4년 후 과연 우리의 축..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 2010/07/01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감독 국대 코치 시절에 2급자격증은 있었고...2급이후 1년이 지나야 딸수있는 1급자격증은 그이후에 바로 땄고..고려대박사학위는 물론 현재는 P급 지도자과정을 밟는 중인데도(잉글랜드에서 받아야하는 수업과 자격심사만 하면 되는걸로 알고있음) 아직도 '3급 자격증'도 없다고 아는 사람도 많더군요;

  2. BlogIcon ICCsports 밝은터 2010/07/0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격증이요? 하하...자격증...자격증이란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자격이 있나 하는 것인데...음..홍 감독은 존재 자체가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3. 칼미아 2010/07/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정무감독이 아닌 다른감독이었다면.. 16강이 아닌 그이상을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전술적인 우위와 조직력보다는 특정선수의 능력에 의한 경기운영을했고 그것이 통하면서 조별예선을 통과한것이니까요. 조직력의 기본은 수비입니다 수비가 좋지않은팀이 조직력이 좋다고 말할순없죠 이조직력은 바로 감독의 역량을 측정하는 척도가 됩니다 허정무감독은 수비와 미드필더간의 조직력을 다지는데 실패했죠. 이는 반론의여지가없습니다. 98년 아시안게임과 2000년 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 이미 세번이나 실패한감독 전남드래곤즈에서 이렇다할 성적한번 내지못한 허정무감독을 대표팀감독시킨것부터가 잘못이었을뿐입니다. 김호 장외룡 김학범 같이 팀정비하는데 충분한 능력을 보여준 감독중 하나가 대표팀감독을 맡았다면 사상최고의 해외파들이 포진한 대표팀에 상당한 플러스 알파가되어 더 좋은경기를했거나 16강이상의성적을 거둘수있었을겁니다 비록 16강에 가긴했지만, 우리경기는 마치 손발안맞추고 급히 소집해서 게임하는 유럽의 중상위권 이상팀 같았습니다. 게임내용을 살펴보자면 이영표가 중앙미드필더들보다도 더 공수 연결고리를 해주면서 플레이메이킹역할을 해주더군여. 템포조절 뿐아니라 패싱연결까지.. 이영표가 없었다면 그리스 나이지리아전 선전은 없었습니다 또한 박지성선수야-.-두말할나위없이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좀더 전술적인 뒷받침이있었다면 박지성선수가 더 휘저을수있었을텐데 너무 홀로 고군분투하는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 두선수가 없었다면 허정무감독은 16강은 커녕 1승도 쉽지않았을겁니다. 그만큼선수 역량에 의한 축구가 얼마나 위험한것인지 말해주는것이겠죠 최종예선내내 게임내용은 개판오분전이었으나 결과가 좋았기에 이러한 것들이 다 묻혔고. 결국 월드컵에서 자신이 2000년 올대에 승선시킨 선수들이 선전하면서 비난을 비껴갈수는있었으나 게임내용과 전술적인 대응, 선수교체와같은 ㄷ상황 대처능력은 절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2012년 올림픽에 전념시켜야합니다 그이후 14년 월드컵 대표팀감독을 맡기든 뭘하든해야겠지요 지난 청대팀에서보여준 선수선발그리고 적재적소에 선수를 활용하는 능력, 전술적인 이해도와 상대팀 전략과 특성에다른 대처능력을 보자면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4. 밝은터 2010/07/01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식견이 있으신 축구 팬이신 것 같습니다. 다른 감독이라면 누굴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다른 감독'은 가상의 인물이고 가상의 인물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토론이 너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감독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고 허정무 감독이 가장 좋은 대안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부분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봅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못 한 것은 못 했다고 해야 다음 감독들이 덜 부담을 느낄 것 같습니다. 축구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도 아니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고 빠른 판단력이 필요한 것이기에 부족한 부분도 있고 잘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이영표, 박지성에 대한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전술과 선수 교체에서 문제가 있는 것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비난이 있어서 그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잘한 것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 올림픽 전념이 결국은 월드컵 준비나 같겠죠. 대체로 저와 비슷한 견해인 것 같습니다.

  5. 홍명보축구반대 2010/07/02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딩크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 수비수들끼리 아래로 공패스해서 홍명보처럼 자살골먹는 경우다.

    그런 수비수출신에게 대표팀감독 맡긴결과는 저번경기에서 결과가 나왔다.

    수비위주경기하는 수비수출신 대표팀감독은 어쩌다 한두번 승리뿐이고 패배가 다반사다.
    오히려 공격수 박지성이 감독하는것이 100배낫다.

    박지성말고도 공격축구하는 감독들이 월등하고 져도 잘한경우가 많다.

  6. 홍명보축구반대 2010/07/02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비위주의 홍명보축구는 한국탈락뿐이다.

    차라리 히딩크의 경기 경험한선수중 현재 감독으로 있는 사람들이 월등한 실력이다.

    홍명보는 히딩크가 제일 싫어하는 수비수끼리 아래로 패스하고 자살골먹는 수비위주의 축구는 이미 16강도 갈수없는 것이 세계축구에서 증명되었고 홍명보처럼 수비수끼리 아래로 패스해스 자살골먹는 홍명보씩 수비 축구는 전세계에서 전부 패배뿐인 것이 증명된 축구스타일이다.

  7. 루이나 2010/07/02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비엘사,히딩크 레벨의 감독이 아니라면, 따로 영입할 필요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비엘사급의 감독을 영입해야 합니다. 비슷한 레벨의 일본도 이정도 감독을 영입준비하고 있는데, 국내 정해성코치나 홍명보 감독을 영입한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정해성코치는 이뤄낸 성과가 없는 검증안된 감독이고, 홍명보감독또한 청소년,올림픽감독정도만 했지, 제대로된 프로팀하나 꾸려간적 없는 비교적 감독초보입니다. 그걸 알기에 보인또한 국대감독직을 맡지않겠다하는것이구요. 선수로서의 명성,청대시절의 한번의 성과 만으로 국대감독을 맡긴다는것이야말로, 아주 성급한 처사라고 생각되구요. 사실, 감독한명 들어온다고 완전히 다른 수준의 팀이 될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지만, 우리나라축구의 가장 시급한 문제인, 유소년육성 프로그램과 뿌리깊은 지연.학연 위주의 축구계,아마축구계의 감독.코치진의 성과주의와 부패, 등을 먼저 해결하는것이 급선무이고, 이문제들을 조금이라도 터치하려면 외국인감독이 들어와야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지금 체제를 고수하게되고 한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탈아시아의 세계수준을 넘어서는건 불가능하지요.

    • 밝은터 2010/07/03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감독 있으시면 추천해주세요. 비엘사는 일본에 갈 것 같군요...

  8. fff 2010/07/02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홍명보 우리나라에서 살아있는 전설이고 지금 축구계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이라 본다. 또 젊은 선수들이 보고 자란건 국내외의 스타감독들의 플레이가 아닌 홍명보의 축구다. 똑같이 한마디해도 홍명호의 한마디가 선수들에게 더 잘 와 닿을거라본다. 그렇다면 홍명보는 자신의 색깔을 팀에 입히기 더 쉽고 전술적완성도가 더 높아져 국제무대에서 더 좋은성과를 낼수 있으리라 본다

  9. mm 2010/07/03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명보는 감독으로서 검증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아직 아직 멀었다고 봅네다...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국대감독 거부했고요...그게 정상이죠...14년 월드컵은 아니죠...나이로 볼때도...지금 69년생인데...ㅡㅡ국대감독이 상식적으로...파격이죠...그렇게 되면...국대감독 실패시...님이 홍선수 인생 책임질거유...ㅋㅋㅋ 생각이 없으셔....순서대로 차근차근 밟아가야 탈이 없는겁니다...

    • 밝은터 2010/07/03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게 두려우면 청대 감독도 하지 말았어야죠. 고교, 대학, 프로팀을 맡았어야했겠죠. 흐름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 흐름을 못타면 2018년에는 외국 감독 체제로 들어가서 한국 감독이 기회는 더 없을 수도 있습니다.

  10. 축구팬 2010/07/03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 감독이 차근차근 코치 수업을 받으려면 국대 코치로 시작하면 안 됐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지도자 수업을 받는게 다르죠. 어차피 국대 코치, 청대 코치, 올대 코치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니 월대 코치가 되는 것은 수순인 것 같습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결과를 보면 좀 더 분명해지겠죠?

  11. 2010/07/03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홍명보감독에 대해서 좋은이미지를 가지고있는 입장입니다
    "국내감독중에서 굳이꼽자면"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마음속깊이 생각하는 의구심.. 학연,지연,축협인맥 등등
    그런것에서 과연 홍명보라고 하더라도 자유로울수 있을까요?
    더구나 젊으니까 오히려 힘이없어서 반기를 들수도 없을거같네요
    월드컵을 한 2년 앞두고는 외국인감독을 영입하는게 정답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답이 안나와요,
    반드시 외국인을 영입해야 합니다
    축협을 뜯어고치기 전에는요

    • 지나가다 2010/07/03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랑 생각이 같으시군요..
      축협부터 먼저 손보지 않으면 차기 월드컵은 기대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홍명보가 현 축대라인 비호아래 큰건 다 아는 사실이고 또한 자유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요.
      홍명보는 좋은 말로 우선 경험을 더 쌓으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검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K리그 감독부터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면 일부 검증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ㅎㅎ

  12. Conor 2010/07/03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명보 후원회 발기인인가?

  13. ㅎㅎㅎ 2010/07/04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축협에 대한 불신이 엄청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