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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 특집 연재



축구는 1882 2월 왓슨 허턴이라는 교사가 스코틀랜드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한 후에 소개됐다. 이후 허턴이 중심이 돼 아르헨티나에 축구리그가 탄생했고 그가 세운 세인트앤드류스학교가 1891년 우승을 차지했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등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이 축구에 더욱 집중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축구의 나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이웃 나라인 우루과이도 같은 방식으로 축구가 발전하자 이미 1901년에 국가대항전을 벌이는 등 활발히 축구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1910년에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가 3개국 국가대항전을 열어 제법 국제대회의 모습을 갖췄다. 이는 이후 남아메리카축구연맹이 창설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 무렵 영국의 유명 구단들이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남아메리카 축구 방문을 하면서 축구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축구는 아르헨티나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노동계층이 축구를 장악하면서 대중 스포츠로서 자리를 굳혔다.

 

정치와의 연계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가 그렇듯이 축구는 아르헨티나 정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1930년대에 노동계층이 축구를 장악하면서 중상류층이 위기 의식을 느꼈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간지인 엘 그라피코(El Grafico)’는 상류계층이 축구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자 럭비와 크리켓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었다고 썼다.[1] 하지만 계급과 부의 소유에 관계 없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대체로 축구에 몰입했다. 축구의 인기가 높아지자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처음으로 축구를 프로화시켰다.



193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축구는 가우초(gaucho: 대초원 지대를 무대로 한 유목민), 아사도(asado: 구운 소고기 요리)와 함께 아르헨티나 국가를 상징하는 문화의 주요 일부가 됐다.[2] 아르헨티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된 축구는 이후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194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정권은 축구를 앞세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려고 했다. 축구는 페론주의 정권(1946-55)에서 주요한 대중 문화가 됐고 이후 축구에서의 성패는 국민의 환희와 좌절에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에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고 국민의 관심을 정치 밖으로 돌리기 위해 월드컵 유치에 나서는 등 축구를 국민과의 갈등 해소 도구로 활용했다. 스포츠 경영학자인 지만스키는 1970년대 군사정권 당시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극에 달한 아르헨티나에서 독재자들은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1975 FIFA 1978년 월드컵 개최지를 아르헨티나로 결정했으나 그 다음해 아르헨티나에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권력을 잡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라디오와 TV의 모든 프로를 중단시키고 군사 행진곡을 반복 방송했다. 방송이 허용된 유일한 프로는 폴란드와 아르헨티나 간의 축구 경기였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파산지경이었지만 국가 예산의 약 10%를 월드컵 대회 준비에 사용했다.”[3]

 

군사정권이 국민에게 만족을 주지 못함을 잘 알았기에 축구에 대한 만족감으로 대신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에서 군사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정치 밖으로 돌리는 도구로 스포츠를 사용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군사정부는 페루 군사정권에 35,000톤의 곡물과 5천만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했는데 이는 페루와의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해야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했던 일종의 뇌물이었다.. 당시 막강 전력을 자랑했던 페루는 주전 4명을 빼고 0-6으로 패했다.[4] 남미에서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이 대륙의 독재자들이 잘 쓰는 수법이었는데 아르헨티나에는 이미 1966년부터 1970년까지 군사독재자인 온가니아(Ongania)가 축구를 적절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한 바 있다. 그러한 일이 아르헨티나 현대 역사에서 계속 반복했다.

 

국내리그의 쇠퇴

 

정부가 축구를 적절하게 이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아르헨티나 국내리그가 세계적인 리그로 성장하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독재자들로 인해 대체로 국내 정세가 불안했고 축구리그가 안정되게 운영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축구 강국으로서 대접을 받은 나라이면서도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꽤 오래전부터 아르헨티나 스타 선수들은 유럽에서 뛰기를 원했다. 유럽은 그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다.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의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했냐하면 1980년대 최강 클럽은 국제 클럽 대회에 2군을 내보내고 대신 출전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유럽 순회 경기에는 1군을 보내 구단 운영비를 벌 수 있었다.[5] 따라서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의 클럽에 대한 충성심은 크게 낮은 편이었다. 세계 최강의 축구 국가에서 국내 리그가 형편 없이 운영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21세기 들어서도 크게 나아지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가 성장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라스 브라바스(Barras Bravas)’의 존재다. 일명 아르헨티나 판 훌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영향력은 유럽의 훌리건 그 이상이다. 이들은 한 클럽 운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며 조직의 폭력성까지 있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할 때가 자주 있었다.

축구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팬들의 투표로 선출되는데 여기서 극성스러운 바라스 브라바스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클럽 운영자는 차후에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들은 정치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치는 단체로 자라났다. 금품 살포는 기본이고 폭행과 살인으로 20년 형을 선고받은 바라스 브라바스 멤버도 있었다.

바라스 브라바스는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의 성장을 막을 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결국 사회를 어지럽히는 존재들이 됐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사회에서 축출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정치인이나 경영자가 아닌 열렬한 축구 팬들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국내 축구 리그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분명히 있었지만 상류층의 외면과 군사정권의 등장 그리고 국내 경제의 불안 등으로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시장은 21세기들어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유럽의 빅리그와 견주면 왜소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수퍼스타를 배출하는 이유

 

그럼에도 아르헨티나는 계속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해내고 국가대표가 국제무대에서 계속 정상의 기량을 보이는 것은 역시 민초의 축구에 대한 사랑이 항상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들은 대부분(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배경이 초라하다. 이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폐허지나 슬럼가에서 성장하면서 축구 선수로서 큰 돈을 벌고 유명해지겠다는 일종의 헝그리 정신이 강하다. 축구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도 물론 있지만 성공에 대한 꿈이 그들이 축구를 더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국내 리그는 빈약하기에 그지 없지만 일단 아르헨티나 축구 리그에서 축구를 잘한다는 판정을 받으면 부와 명예가 보장된 유렵 축구 리그로 갈 수 있기에 어린 축구 선수들은 안심하고자신의 삶을 축구에 던진다.

아르헨티나가 낳은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난한 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0세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훗날 펠레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로 성장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는 마라도와와 같은 선수를 유럽에 잃고 싶지 않았지만 국내 리그의 여건상 그가 이탈리아로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은 1930년대에도 이탈리아에 대거 선수를 빼앗기고 그들이 국적을 변경해 이탈리아 대표로 뛰는 것을 보면서 분노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 프로리그가 생겼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21세기에도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들의 꿈은 결코 국내 리그에서 뛰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해서 유럽의 빅리그 구단과 계약을 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러한 그들의 희망은 거의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스타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아르헨티나가 단순히 스타 파워 때문에 축구를 종교적으로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축구는 삶의 중요한 방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축구로 인해 행복해하고 축구로 인해 일치 단결이 된다. 아르헨티나에서 계층간의 화합이 일어나는 유일한 문화가 축구이다. 축구에 대해서는 빈부의 격차도, 사회적 지위도, 명예도, 학력도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르헨티나 축구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인들은 축구를 통한 화합을 지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경험했다.

축구 투쟁의 역사라는 책을 쓴 사이몬 쿠퍼(Simon Kuper)는 당시 상황을 증언한 한 아르헨티나 국군장교의 말을 다음과 같이 받아 적었다: “모든 시민이 길거리로 나와 기뻐했다. 진보주의자들은 페론주의자들와 껴안았고 가톨릭신자는 개신교신자, 유대교신자와 부둥켜 안았다. 우리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들고 한 마음이 됐다.”
[6] 한국인이라면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상황과 1978년 월드컵 당시의 상황과 비슷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84년에도 월드컵 우승팀이 된 아르헨티나의 축구 팬과 대화를 나눌 때 축구 전문가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대부분 축구 선수이거나 축구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폭력과 협박이 난무한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가 성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국을 연상하면 안 된다. 그래도 축구가 대표적인 문화 현상인 나라이기에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는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활발하게 움직여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무려 24개 프로 구단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래서 도시를 대표하는 개념보다는 동네를 대표하는 개념이 더 강하다. 팬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구단을 응원하는 것보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곳을 근거지로 한 구단을 응원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24개 프로구단이 있지만 대표적인 구단은 라 보카(보카 주니어스), 리베르 플라테, 인디펜디엔테, 산 로렌소 등이다. 라 보카(보카 주니어스)와 리베르 플라테의 경기는 아르헨티나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라이벌전이다. 최고의 라이벌전이 도를 넘어서 살인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난 19904 4월 보카주니어스의 팬들이 두 명의 리베르플라테 팬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섬뜩한 사실은 클럽들은 폭력적인 서포터들에게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상대팀의 선수나 관계자에게 폭력을 사용하고 위협과 협박을 하는 서포터에게 수고비가 지불됐다. [7]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축생축사’(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리서치 및 편집 이 블로그(ICCsports.com)의 운영자 밝은터]





[출처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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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 특집 연재 라인업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월드컵 4회 우승에 빛나는 이탈리아는 축구의 나라다. 축구 없는 이탈리아는 야구와 풋볼이 없는 미국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축구 스캔들로 자칫 위기를 맞을 수 있었던 이탈리아는 그러나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우승으로 빛났다. 유럽 축구에서 점점 힘을 잃어갔던 이탈리아는 이전보다 더 인정을 받게 됐다. 물론 스캔들이 걸림돌이 되겠지만 말이다.

 

세계 최고의 리그 세리에 A와 정치

유럽의 빅리그(4대 리그) 중 최고 수준으로 인정되는 리그를 운영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시민들은 "우리는 빵보다 축구가 더 좋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축구는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세리에 A에는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재계의 총수, 심지어 마피아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돈과 명예를 쥔 사람들이 힘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방편이 세리에 A의 구단주가 되는 일이다. 세리에 A의 명문 구단인 유벤투스, AC 밀란, 인터 밀란 등은 모두 세계적인 기업들의 총수가 구단주로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준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총리였던 거물이다. 그가 총리가 되는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그는 언론재벌이었다. 언론사 운영으로 억만장자가 됐던 베를루스코니는 세리에 A의 구단을 사들여 자신의 세를 넓혔다. 그는 새로운 정당인 포르자 이탈리아를 세워 정치력을 굳게 다졌고 결국 언론과 축구 덕분에 총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부패한 경제인, 정치인이었지만 축구에서 얻은 좋은 이미지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 지도자로서 이탈리아를 세계대전 속으로 끌어들여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인물인 무솔리니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축구를 정치에 적절히 이용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무솔리니는 처음에는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축구가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철저히 이용했다. 무솔리니는 축구를 군인정신을 함양하고 강한 국가 이미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무솔리니의 영향 때문에 재계에서도 축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23년 피아트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인 지오반니 아그넬리가 토리노의 유벤투스를 인수해 분위기를 띄웠고 1930년에는 세리에 A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스포츠에 정계와 재계 그리고 심지어 조직폭력 세력까지 깊숙이 스며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축구는 그래서 자주 스캔들에 휩싸인다. 특히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터진 세리에 A의 승부조작 스캔들은 축구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스포츠의 순수성은 사망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는 무솔리니와 재계 거물급 인사들 그리고 조폭 세력의 영향 때문이었다. 무솔리니는 유명한 파시스트였다. 그의 영향력은 축구에도 스며들어 오늘날까지 심각한 인종차별이 축구계를 떠나지 않고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거부감 심각

이탈리아인들은 대체로 유색인종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사람들이다. 또한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1966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북한에 0-1로 패하는 등 예선 탈락의 수모를 당하자 이탈리아인들은 귀국하는 선수들에게 썩은 토마토 세례를 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 패배 후 충격에 휩싸인 이탈리아는 외국인 선수의 영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탈리아는 또 2002 월드컵에서 한국에 패하자 심판 매수설을 주장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대표팀을 보면 흑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유색인종에 대한 거부감이 큰 나라이기에 반 이민 정책도 강하고 이 정책을 앞세우는 극우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7년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인 데니 멘데스가 미스 이탈리아로 선정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축구 저널리스트 서형욱 씨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인종차별 경험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근처에서 놀던 동네 꼬마들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나름대로 영화에서 본 것은 있어 친절한 답례를 기대하고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건 완벽한 오판! 내가 손을 흔들자 꼬마들은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힘껏 던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영어임이 분명한 몽키라는 말도 함께 내뱉는다. 이탈리아 시골에서 길 잃고 헤매다 꼬마들에게 인종차별이나 당하다니.”[1]

한때 외국 선수 영입 금지가 내려진 후 이탈리아는 '우리의 힘으로 세계 최고의 리그를 만들 수 있다'고 선언했지만 이는 이탈리아 축구를 '우물안 개구리'로 만들었고 1980년대 초에 금지령은 해제됐다. 유색인종 선수들 없이는 오늘날의 세리에 A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지만 여전히 사회 속에 뿌리박혀 있는 인종차별 무드는 제거할 수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 프로리그인 세리에 A에서 활약하는 마르크 조로(당시 메시나 수비수) 2005년 인터 밀란의 팬들이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몽키(Monkey)"를 일제히 외치자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나려고 한 바 있다. 이때 팀 동료의 만류로 조로는 끝까지 뛰었지만 그의 이러한 대응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조로는 "3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뛰면서 경기마다 당하는 일이다. 너무나 슬퍼서 견딜 수 없다"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스타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의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강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이를 인종 편견과 연결시켜 극우 세력의 힘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이탈리아 정치인인 로베르토 칼데롤리는 양국의 말싸움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이탈리아가 승리를 위해서라면 흑인, 모슬렘, 공산주의자도 등용하는 프랑스에 승리했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프랑스인들을 자극했다. 프랑스 언론은 그의 발언을 강도있게 비난했는데 극우파인 칼데롤리는 이탈리아 극우 세력의 앞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따라서 양국 국민 사이에 앙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칼데롤리는 또한 "이탈리아가 다인종 팀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은 '정치적인 승리'"라고 말하며 백인과 유색인종을 대결구도로 놓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이민정책 주창자인 칼데롤리는 지난 2월 이탈리아 TV 토크쇼에도 이슬람 예언자 무하마드의 만화가 그려진 T셔츠를 입고 출연해 "서구 문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 무슬림들과의 대화 시도는 그만둘 때가 됐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이슬람교도 1천여 명이 시위에 나서 11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뒤따르기도 했다. 칼데롤리는 당시 장관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극우세력의 뒷받침으로 정계에서 입지를 굳힌 바 있다.

이탈리아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축구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 사건도 정치적으로 이용했는데 이탈리아 극우 세력은 프랑스에 대한 국민감정 악화를 이용해 반 이민 무드를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와 관련된 인종차별은 각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기사화 된 바 있는데 한겨레 신문의 2005 110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됐다.

 

7일 로마에서 열린 라치오와 AS로마의 이탈리아 세리에A ‘로마 더비’에서도 1930년대의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 시대로 착각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29분 선취골을 터뜨린 라치오의 스트라이커 파올로 디 카니오는 AS로마를 3-0으로 이긴 뒤 스탠드 북쪽 끝에 있는 안방 팬들에게 달려가 오른팔을 하늘 쪽으로 쭉 펴는 ‘파시스트 경례’를 했다. 이에 대해 무솔리니의 손녀인 알레산드라 무솔리니와 극우주의자들은 “그의 ‘로마식 경례’가 얼마나 멋졌는지, 그것은 나를 기쁘게 했다”고 말했다. 반면, 중도좌파 정치인 엔조 포시는 “그를 축구선수로서 존경하고 있지만, 그의 행동은 나를 섬뜩하게 했다”고 말했다.[2]

 

이는 파시스트의 영향력이 현대 이탈리아 사회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축구가 정치, 재계와 밀월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탈리아 축구는 자주 스캔들에 휩싸였다. 승부 조작 스캔들은 대표적인 것이다.

 

스캔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터진 승부조작 스캔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탈리아 검찰은 이탈리아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전화 통화를 감청했는데 여기서 의외의 내용을 듣게 됐다고 한다. 이는 이탈리아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구단인 유벤투스의 승부조작과 관련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유벤투스의 단장인 루치아노 모지가 이탈리아축구연맹의 간부에게 특정 심판의 배정을 청탁했고 그 심판에게 사례비를 건넸다고 한다. 세계적인 구단의 수뇌부가 벌인 일이기에 이는 대형 사건이었다. 검찰이 추가 조사를 해보니 이는 유벤투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AC 밀란, 피오렌티나, 라치오 등의 세리에 A 구단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있었다. 또한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야신상 수상자' 부폰은 축구 도박에 참여, 승부조작을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승부조작 스캔들은 이탈리아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됐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이번 사건으로 이탈리아 선수들은 절치부심하며 120%의 기량을 발휘했다. 독일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않으면 세리에 A는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사회와 문화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영상입니다. 강추입니다.


축구장 안에서도 정치적 

    
      이탈리아 축구는 빗장 수비(카테나치오)로 유명하다. 21세기에돗 빗장 수비는 여전히 존재한다. 공격이 좀 더 강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뒷문을 잘 잠근 후에 역공세를 펼치는 작전이 이탈리아 축구를 건져내고 있다. 카테나치오 스타일에는 단순히 빗장 수비만 있는 게 아니다. 카테나치오 축구는 심판에 영향을 미치는 제스처와 적절한 항의로 보상 판정을 받으려는 축구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축구 선수들은 골을 먹으면 심판을 향해 뭔가 항의하는 듯한 제스처를 쓴다. 계속된 항의 제스처는 경기 막판에는 보상 판정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도한 할리우드 액션을 쓰는 것도 다 이런 맥락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심판이 경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심판을 어떤 방법으로든 이용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것이 실제 스캔들로 번진 것이고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눌렀을 때 심판이 매수됐다고 쉽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축구에 정치인들의 개입이 심한만큼 선수와 코치들도 정치적인 행동을 적절하게 이용하려고 드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인 유벤투스 AC밀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심판 덕을 본 것이라는 말은 더이상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정도다.[1] 이탈리아인들은 정치, 오페라, 축구를 자신들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이 세 분야에 대해서 모두 전문가요 공동 플레이어라고 생각한다. 즉 정치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발언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믿고 오페라와 축구를 볼 때도 단순히 관람객으로 자신들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오페라와 축구에 대해 비판을 가할 때 그것이 실제 퍼포머(performer)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굳게 믿는다. 그렇기에 그 비판의 내용이 세세하며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하지만 편협된 의견도 적지 않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축구문화 비교

  

  유럽축구전문 사이트 '골닷컴'이 2009년 2월24일 이탈리아와 잉글랜드의 축구 문화 차이를 익살스럽게 짚었다. 이 내용을 소개한다. 이 내용은 이데일리의 김영환 인턴 기자가 번역했다.[2] 이탈리아 축구 문화를 알 수 있는 재미난 글이다. (  ) 안은 필자(박병기)의 코멘트다.

'이탈리아 vs 잉글랜드 : 30가지 문화적 차이'라는 제목의 기사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을 소개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당신이 클럽팀 버스에 오렌지 던지는 것 정도는 경찰이 용인해준다. 잉글랜드에서 그랬다가는 철창행이다.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자신들의 표현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다.)

▲이탈리아 팬들은 해외에선 얌전하게 행동하지만 홈에서는 광포해진다. 잉글랜드 팬들은 홈에서는 조용하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군다. (일단 내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앞뒤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이탈리아 축구팬이다.)

▲잉글랜드 팬들은 경기장 관람석에 앉는다. 이탈리아 팬들은 관람석을 무기로 사용한다. (이탈리아 팬들은 영향력이 있다고 믿기에 폭력성이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잉글랜드의 '스카이 스포츠'가 피터 크라우치(포츠머스 장신 공격수)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 칭한다면 잉글랜드 전역은 믿고 주변에 그 얘기를 전한다. 이탈리아의 '스카이 이탈리아'가 시모네 로리아(AS로마 수비수)가 지구상 최고의 수비수라 말한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위성방송을 끊을 것이다. (느끼면 당장 행동으로 옮기는 이탈리아인)

▲이탈리아에서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유니폼을 끌어당기거나 헐리우드 액션을 취하거나 비신사적인 파울, 심판을 조롱하는 행위들은 게임의 중요한 부분이다. 잉글랜드에서 이런 일들은 비열한 짓이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한다'는 철학이 동반된다. 페어 플레이는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이탈리아 축구는 이기는 축구이기는 한데 볼만한 축구는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수비는 예술이다. 잉글랜드에서 수비는 반()축구다.

▲이탈리아 클럽 선수들은 0-3으로 끌려 가고 있을 때 경기를 포기해버린다. 팬들은 클럽을 욕하고 부진한 선수의 차로 돌진하는 한편, 다음날 아침 선수들의 훈련장을 습격한다. 잉글랜드에서는 0-8로 지고 있는 상황이라도 선수들은 투지를 잃지 않고 공을 쫓는다. 결과가 패배라고 할지라도 팬들은 응원과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반도의 기질인가?)

▲잉글랜드에서 나쁜 심판은 무능력자지만 이탈리아의 나쁜 심판은 타락한 심판이다. (뇌물이 당연시되는 이탈리아 축구)

▲잉글랜드의 주말 축구 프로그램은 99%의 하이라이트와 1%의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탈리아는 1%의 하이라이트와 99% 분석이다. 느린 화면 리플레이가 있을 때도 있다.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고 자신들이 플레이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에서 5년 동안 선수생활을 했던 존 찰스는 영국 축구로 복귀하면서 이탈리아 축구와 영국 축구의 차이점으로 팬과 언론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팬들이 아주 작은 실수를 한 선수에게도 욕설을 하는 분위기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며, 눈부신 활약을 하거나 결승골을 넣은 선수에게 열렬한 갈채를 보내고 심지어 펜클럽을 결성하여 그 선수에게 보너스로 줄 돈을 모금하는 분위기를 만끽했다고 설명했다.[5]

     영국 출신 축구 선수이자 유명 축구 매너지였던 조지 레이너도 이탈리아 축구에 대해 대기업의 전횡과 부패가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에 나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6] 그는 팬들의 폭력성에 너무 힘들어 했으며 잘되면 끝없는 칭찬과 선물이 들어오지만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점이 이탈리아 축구에서 힘들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축구라는 주제에 대해 태그(tag)’를 달라고 한다면 정치와 대기업의 깊숙한 개입, 국민과 언론의 세세한 개입, 인종차별 무드, 광기를 쓸 수 있겠다. 정도에서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역시 같은 반도 국가인 대한민국과 성향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리그 운영 방식

이탈리아 리그에는 단계별로 세리에 A, 세리에 B, 세리에 C1, 세리에 C2 등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리에 A 1부리그로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이 여기서 뛰고 있다. 세리에 A에는 유벤투스, 인터 밀란, AC 밀란과 같은 명문클럽들이 속해 있다. 1부리그인 세리에A에는 20개 팀이 속해 있는데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팀에는 '스쿠데토(Scudetto)'라는 별칭이 붙여지고 이는 다음 시즌 유니폼에 방패 모양의 이탈리아 국기를 부착하는 권리를 얻을 수 있는 영예로운 호칭이다. 이탈리아에서 축구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축구 도박의 엄청난 규모 때문이다. 축구 복권인 `토토 칼초`는 이탈리아 축구 팬들에겐 마약과 같다고 한다.


 


 마라도나가 이탈리아 리그의 나폴리에서 뛰었던 시절의 영상 


이탈리아 리그의 수퍼스타

세리에 A에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많이 뛰었다.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네드베트(체코), 비에이라, 튀랑, 트레제게(프랑스), 부폰, 델 피에로, 네스타, 인자기, 데 로시, 토니, 토티, (이탈리아), 카푸, 카카, 아드리아누(브라질), 셰브첸코(우크라이나) 등이 그들.

이탈리아 세리에 A는 과거에도 세계적인 선수들이 집결되는 리그였다. 프랑스의 영웅 플라티니(유벤투스), 아르헨티나의 축구 천재 마라도나(나폴리), 네덜란드 출신의 '오렌지 삼총사' 레이카르트, 굴리트, 반 바스텐(AC 밀란), '독일 삼총사' 마테우스, 클린스만, 브레메(인터 밀란) 등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축구를 했다. 한편,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736명 중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던 선수는 60명이 넘었다. [리서치 및 편집: 이 블로그(ICCsports.com)의 밝은터]

 



 [출처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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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 2009/12/12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좀 퍼가도 될까요.
    문제되면 삭제할게요

    • 밝은터 2009/12/12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퍼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 트랙백으로 드리겠습니다. 주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다~ 좋은 데... 2009/12/13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도 기질?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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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us Hiddink
Guus Hiddink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일본, 덴마크, 카메룬과 함께 E조에 속한 네덜란드는 축구만 보면 한국과 상당한 긴밀한 관계다. 한국이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던 거스 히딩크가 네덜란드 축구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접목한 이후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으로 화란 출신 축구 지도자의 계보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한국과 네덜란드가 궁합이 잘 맞다기보다는 네덜란드 지도자들은 선진 축구를 하는 다른 나라의 감독보다 무언가 뛰어나 그 어디를 가도 성공을 거둔다고 분석하는 것이 맞는 해석일 것이다
.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중 화란 출신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맞긴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4개국이었다. 한국(아드보카트), 호주(거스 히딩크), 트리니다드&토바고(레오 베인하커), 그리고 네덜란드(마르코 반 바스텐)가 네덜란드 출신 감독에 운명을 걸었다.


네덜란드 감독협회장인 얀 레커는
UEFA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본선에 올려놓은 조 본프레레도 네덜란드 출신이다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1] 레커는 네덜란드가 세계축구에 준 영향에 대해 부연 설명을 했다. 그는 유소년팀 감독들을 포함한 총 93명의 네덜란드인 감독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하지 못한 감독들 외에도 대표팀 감독이 있는데 옐레 고즈(에스토니아), 헹크 위즈만(아르메니아), 아징 그리버(아루바), 얀 브라우워(잠비아)가 그들이다라고 덧붙였다.

South Korea World Cup Fans Celebrate

네덜란드 감독들은 어떻게 이렇게 세계 축구 곳곳에서 활약할 수 있었을까. 이는 1974년 월드컵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토탈 사커덕분이 아닐까 싶다. 수비 위주의 축구가 대세였던 당시 수비수가 공격수 역할을 공격수가 수비수 역할을 맡는 토탈 사커의 개발은 네덜란드 축구의 특화로 인정 받았다.


레커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당시 고유의 훈련 방식을 고안해내 축구 지도자들을 해외로 파견했다고 한다
. 네덜란드인들이 고도의 축구지도 기술을 보유한 것 외에도 그들의 기질은 화란 축구의 세계화에 중요한 요소였다. 다음은 레커의 설명이다. “바다와 접한 나라의 특성상, 오래전부터 네덜란드는 새로운 세계와 문명을 개척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른 문화에 곧 잘 적응하고, 그들의 언어도 사용한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창의성 또한 풍부하다.”[2]


 

네덜란드 축구의 세계화


적절한 설명이다
. 실제 히딩크가 지난 2002년 미국에서 열린 골드컵에서 기자들과 영어와 스페인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필자는 목격했다. 영어권 기자와 스페인어권 기자가 동시에 달라붙어도 히딩크는 어려움 없이 질문에 답변을 했다. 히딩크는 네덜란드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등 5개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네덜란드인들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는 코스트 하트 포르 더 바트 애트(Kost gaat voor de baat uit)” 정신이 그들에게 깃들어 있다고 했다.[3] 이는 영어로 ‘Cost comes before profit’인데 이익을 내기 전에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이익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아드보카트의 경우 조심스러운 축구를 좋아했다. 그는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한국이 2-1로 앞서나가자 안전운행을 택했다. 하지만 대체로 네덜란드인들은 모험을 좋아하고 시행착오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히딩크의 경우 2002 월드컵이 열리기 전 유럽의 강호와 자주 대결을 벌여 0-5로 반복해서 패하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는 담담히 창피한 일이 아니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 2002년 월드컵 한국 대표팀 언론 담당관이었던 허진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타 네덜란드 사람이 듣기에는 좀 민망할지 모르지만 사실 네덜란드인들은 돈에 무지 까탈스런 사람이자 깊이 있게 사귀기가 힘든 국민성을 갖고 있다. 아마도 해양민족의 특성상 그런 모양이다.”
[4]


부정적으로 보면 까탈스러운 것이고 좋게 보면 돈을 아끼는 사람들이 네덜란드인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래서 더치 페이(Dutch pay)’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서울대 인류학과 출신인 정은령 기자는 이를 인류학적으로 흥미롭게 풀었다.

 

‘철저한 계산’ ‘숫자를 믿어라’는 네덜란드인에게는 종교적 뿌리가 있는 사고방식이다. 네덜란드는 1617세기 전 유럽을 휩쓴 종교개혁의 와중에 열렬한 칼뱅주의의 깃발 아래 섰다.

칼뱅주의는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 않게 일해서 번 돈을 최후의 한푼까지 철저히 잘 계산해 필요한 데 지출하는 것을 진정한 신교도의 자세로 강조했다. 물보다 낮은 땅에 살며 수리관리를 해야 하는 생존여건도 네덜란드인들이 ‘숫자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이런 복합적인 배경에 힘입어 회계학이 발전했다. 1602년 세워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장부정리 방식은 오랜 세월 ‘회계의 전범’으로 꼽혀 왔다. 네덜란드 고교생들은 지금도 선택과목인 경제에서 회계를 배운다.”
[5]

 
네덜란드어에는 (Nu)’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나우(Now. 지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가 어쨌든 지금이 중요하다는 사고 방식이 그들에게 있다. 히딩크도 그랬고 아드보카트도 비슷했다. 과거 경력보다는 현재 나의 시스템에 맞는 선수가 누구이고 지금 최고의 컨디션을 가진 선수가 누구인가가 그들에게는 중요하다. 홍명보는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에서 히딩크가 황선홍과 최용수와 같은 기존의 스트라이커를 제쳐두고 어린 설기현을 주전으로 훈련시키고 선발로 기용한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할 정도로 네덜란드인의 (Nu)’ 사상은 축구에도 젖어있었다.[6]


히딩크가 한국 팀을 맡은 직후 팀 원들 간에 대화가 부족한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화란인인 그가 이를 좋아할 리 없었다
. 화란사람은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축구 필드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커튼을 젖히는 문화와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다음은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의 계속된 문화 인류학적인 설명이다.

 


암스테르담이건 헤이그건 밤이 되면 사람들은 밖으로 난 창의 커튼을 열어 젖힌다. 칼뱅이 종교개혁 할 당시 남이 안 보는 데서 음습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커튼을 열어 놓은 것이 기원이다. 히딩크 감독이 호텔 객실에서 TV로 경기 화면을 보며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는 모습이 커튼을 열어 젖힌 창을 통해 TV 카메라에 잡힌 일도 있다.


신 앞에 투명해야 한다는 프로텐스탄티즘의 윤리는 어떤 편견도 두지 않는 개방적인 사고로 발전했다
. 다양한 생활방식과 사고를 허용해 데카르트, 존 로크 등 자기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 사상가들이 모국보다 네덜란드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7]


 


잉글랜드의 유명한 축구 지도자인 보비 롭슨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네덜란드 축구 명문 클럽인 PSV 아인트호벤의 사령탑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모욕적인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선수들이 감독의 전략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전략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열린 커튼 문화와도 직결되어 있다.

 

의견 공유를 좋아하는 네덜란드인


한국어로도 번역된
축구 전쟁의 역사(Soccer against the enemy)’의 저자인 사이몬 쿠퍼는 네덜란드 선수들은 말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 축구 잡지의 인터뷰 기사는 4장 분량이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약간은 경직된 사회의 구성원이었던 롭슨 감독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8] 잉글랜드에서는 선수들이 감독의 전략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화에 열려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네덜란드 축구가 생각하는 축구가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쿠퍼는 이에 대해 선수들이 생각하는 축구를 하면 이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토탈 사커는 기계적인 연습만으로 만들 수 없다. 경기 중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제대로 된 토탈 사커를 할 수 있는데 이 시스템은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꼭 맞았다. 따라서 어설프게 토탈 사커를 적용했다가는 망신을 당했다. 히딩크도 한국 선수들에게 필드에서의 대화를 강조한 바 있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과 전략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수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

예를 들어, 한참 나이 어린 이천수가 노장 홍명보에게 명보라고 외쳐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히딩크는 호칭을 바꿀 것을 지시했다. 축구장에서 홍명보 선배님’ ‘홍명보 형이라고 부르다가는 공을 뺏기기 십상이기 때문에 짧게 명보라고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플레이에 도움이 된다고 그는 판단했다. 이는 실효를 거뒀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쿠퍼도 이를 칼뱅주의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칼빈주의자들이다. 칼뱅은 신앙인들에게 성직자의 절대권한(특별히 구교)을 무시하고 직접 성경을 읽을 것을 권했다고 설명했다.
[9]

따라서 축구장에서 감독은 절대자가 아니다. 이는 잉글랜드나 한국의 선수들과는 다른 자세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수용적인 반면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대화를 많이 하는 문화에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축구 기자들은 특종을 찾는 사람들이 아닌 진짜 축구 기자같다는 말도 있다. 롭슨 감독은 기자들은 자신들이 축구 코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0]

대화와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토탈 사커는 전 선수의 유기적인 공간 활용을 해야 완성되는데, 뛰어난 오렌지(Brilliant Orange)’라는 책을 쓴 데이비드 위너는 그들은 좁은 땅과 비교적 많은 인구로 인해 공간 활용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공간활용을 하지 못하는 살 수 없음을 잘 알았던 그들은 공간개념이 정확하다. 그들은 삶 속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공간을 활용해야 생존함을 알았고 이것이 축구에 접목되어 토탈 사커가 됐다고 설명했다.
[11]

네덜란드 사람들이 할 말이 많고 공간 활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방식이 축구장에 녹아들어갔다고 분석할 수 있다
. ‘공은 둥글다: 세계 축구 역사(The ball is round: a global history of soccer)’의 저자인 데이비드 골드블래트도 토탈 사커는 이미 정해진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현재 내가 있는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수면보다 낮은 지역에 사는 네덜란드인들이 언제 이동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고방식에서 고도로 발달된 공간활용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12]


 

 나쁘게 보면 불평이 많은 문화


네덜란드의 토론 문화
, 생각을 숨기지 않는 문화가 축구장에서도 반영됐다고 했는데 잘못 보면 불평이 많은 문화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 네덜란드에 축구기행을 한 축구 저널리스트 서형욱 씨는 다음과 같이 네덜란드의 문화를 설명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참 불평이 많은 민족이다. 어디서든 불평하고 어디서든        언쟁을 벌이려 든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기자들을 만만하게 본 것이 만나면 (축구적) 말싸움을 거는네덜란드 기자들에 비해 다루기 편해서셨아는 이야기도 괜한 신소리가 아니다. 여하튼, 네덜란드는 그런 나라다. 선수들은 하프타임 때도 라커룸 안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팬들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부진할 땐 가차 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한국 선수들이 이런 문화에 적응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13]

 
실제 네덜란드에서 뛰었던 송종국, 박지성, 이영표 등은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홈팬들로 인해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홈팬들이 심하게 욕설을 퍼붓자 PSV아인트호벤의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는 홈경기에서 박지성을 출전시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선수들이 잘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온정성을 당해 환호하는 사람들이 네덜란드 축구팬들이다. 축구의 발전 역사와 문화가 그들의 축구장 밖의 삶과 비슷한 게 많다는 점이 흥미롭다.



 토튼햄 선수이지만 과거 PSV에서 뛰었던 이영표를 L:ee! Lee!를 외치며 응원하는 PSV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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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Soccer Girls
American Soccer Girls by Randy Son Of Robert 저작자 표시

미국과 축구는 첫 번째 글에서 상세히 소개한 것처럼 연관성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 미국하면 축구에 관심이 거의 없는 나라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중에 미국인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주로 프로농구(NBA)와 메이저리그 야구(MLB)로 쏠렸다. 미국 내에 2006 월드컵 경기를 독점 중계한 케이블 방송 ESPN은 미국 시간으로 새벽에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240만 명이 경기를 시청했을 정도로 그 관심이 미미한 편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행사는 프로풋볼
(NFL)의 슈퍼 보울이다. 닐슨 미디어사에 따르면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 MVP로 선정된 제40회 슈퍼 보울을 잠깐이라도 본 미국인은 무려 14140만 명에 달했다. 축구의 시청자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치다. 미국의 인구가 29천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시청률 50%에 가까운 기록을 낸 것이다. 경기 전체를 볼 때 평균 시청자수도 970만 명이나 됐다. 가구 수로 보면 4585000 가구가 이 경기를 지켜봤는데 이는 드라마 'M-A-S-H' 1983년에 515만 가구를 기록한 이후 최고의 수치다. (참고로 'M-A-S-H'는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야전병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한국을 왜곡시킨 드라마로 한국 지식인들 사이에는 악명이 높다.)


그런데
2006년 독일 월드컵 기간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 미국 내 경기를 독점 중계한 ABC-TV, ESPN, 유니비시온(스페인어 방송)이 FIFA에 중계권료로 무려 45천만 달러를 지급한 것이다. 또한 나이키 등 다국적 미국 기업들은 약 45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공식 스폰서가 됐다.

U.S. Mens National Team v Brazil

ABC-TV와 자회사인 ESPN, 유니비시온 등은 월드컵 전경기 중계를 하는 등 분위기를 띄웠는데 미국의 주요 인종인 백인, 흑인들의 눈길을 끄는데는 실패했지만 스페인어로 방송하는 유니비시온은 대박을 터뜨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앙골라의 경기를 지켜본 히스패닉 시청자는 540만 명으로 영어권 방송보다 훨씬 많은 시청자를 TV 수상기 앞에 앉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 주류 사회는 축구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는 편이다
. 한 여론 조사기관의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 축구팬임을 자처하는 미국인 중 56%가 월드컵이 열리는 국가를 몰랐으며 10%만이 월드컵 경기를 볼 예정이라고 답했다. 미국 기업들과 방송사가 월드컵에 거액을 투자하는 이유는 글로벌 마켓과 미국 내 히스패닉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동안 백인과 흑인이 미국 사회의 중심에 섰지만 이제 히스패닉이 미국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FIFA의 월드컵 중계료 수입에 미국은 큰 몫을 차지 하지 않았다. 경제학 박사인 김화섭은 재미있는 스포츠, 돈 버는 마케팅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컵의 중계료 합계는 22억 달러이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중계료 합계는 26 3000만 달러이다…(중략)

월드컵 중계료 22억 달러에는 미국에 대한 중계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월드컵의 중계료에 미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을 내포하는데, 이제 그 이유를 밝혀보도록 하자.

지금까지(1998년까지) 월드컵은 올림픽보다 시청률이 높은데도 중계료는 오히려 낮았다. 이는 FIFA측이 수익보다는 전세계에 대한 축구 보급에 더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미국에서 축구의 인기가 별로 높지 않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축구의 인기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월드컵 중계방송을 계기로 제품을 광고하고자 하는 다국적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광고에 대한 메리트가 낮다는 뜻이다.”
[1]

 

히스패닉 정치 파워, 축구에도 영향


그런데 이러한 추세는
2006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히스패닉이 미국의 주류 진입을 노리면서 축구도 주류 스포츠로의 진입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계권료를 전체 액수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1998년이나 2002년에 비해 2006년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The Worlds Game at the Worlds Fairgrounds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히스패닉 축구 리그

미국 내에서 히스패닉의 영향력은 인구 수에서 나타난다. 히스패닉 인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와 경제가 이들의 움직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총인구는 2004 71일 현재 293622764명이다. 이중 히스패닉은 전체 14.1%에 해당하는 약 41백만 명. 이미 흑인 인구수(12.8%)를 넘어섰다.
[2]

여기에 서류미비자(소위 불법체류자)들의 숫자도 상당수라 히스패닉 인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스패닉이 좋아하는 스포츠는 역시 축구다. 야구, 농구도 좋아하지만 여전히 축구가 넘버1 스포츠다.

워싱턴 퍼즐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김윤재 (삼우반,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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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정치 컨설턴트 및 변호사로 활동 중인 김윤재 씨가 미국이라는 특수한 국가 형성과 국민 구성은 각 이민 그룹들이 미국 본국과 자신들의 모국 모두의 이해를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가능하게 해준다
[3] 그의 저서 워싱턴 퍼즐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히스패닉은 미국의 스포츠인 야구, 풋볼, 농구에 열광하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축구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다.

특히 초기 이민자의 경우 축구에 대한 사랑이 열정적이다. 미국에서 축구에 대한 전체 그림이 이들에 의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백인들이 중심이 된 사회다. 전체 인구의 80.4%가 백인이고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유럽에서 온 이민자라면 축구를 좋아하겠지만 그 수는 미미한 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들은 왜 축구를 좋아하지 않을까.


축구가 점수가 많이 나지 않는 종목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1991년에 열렸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경기를 한번 돌아보자. 당시 미네소타 트윈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맞붙었는데 최종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다. 7차전에서 트윈스는 10회 연장까지 가서 1-0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9회가지 두 팀은 모두 0의 행진을 했던 것이다. 당시 경기는 박진감이 넘쳤다. 이 시리즈는 타임 매거진의 표지로 소개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점수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지루했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미국인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점수가 많이 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풋볼 경기의 터치다운 한번에 6점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축구가 단순히 점수가 나지 않아서 재미없다고 치부하기에는 경기가 박진감이 넘친다. 특히 국가대표 축구 경기나 유럽 빅리그 경기는 점수가 나지 않아도 수준이 높고 꽤 볼 만하다. 1991년 월드시리즈 7차전처럼 말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유럽의 빅리그 경기를 보면서도 연신 하품을 해댄다.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잠시 불어닥친 축구 열기


1999 FIFA Womens World Cup
브랜디 채스틴이 1999년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직후 웃옷을 벗어 던졌다.

미국에 잠시 축구 열기가 불어닥친 적이 있었다. 지난 1999년 여자 월드컵에서 미국 여자팀이 우승을 차지하자 여자축구 신드롬이 불었다. 그리고 미국 여자 프로축구리그(WUSA)가 창설됐다. 그러나 2003 9월 리그의 문을 닫았다. 축구가 여전히 주류 사회에 파고들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자축구는 수준 높고 힘있는 남성들의 경기에 익숙한 히스패닉들의 눈길을 돌리게 할 수 없었다.


시리즈 첫 번째 글에서 필자가 결론을 낸 것처럼 미국은 축구가 자리잡기에는 환경적으로 어려운 나라다
. 필자는 상상력을 발휘해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축구가 스포츠의 나라 미국에서 틈새 시장을 만들려면 미국만의 새로운 득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저득점 경기는 신세대 팬들을 지루하게 만든다. 경기장에 라인을 하나 더 그어 장거리 슛에 대해서는 2점을 준다든지 코너킥은 득점과 연결이 안 될 경우 2번 기회를 준다든지 하는 ‘특이한’ 제도를 도입해 새로운 세대들의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

또한 경기 중 한두 번의 작전타임을 도입해 스폰서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 축구는 수준은 유럽에 비해 낮지만 재밌더라”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해야 척박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축구는 기존의 틀만 고집하면 미국에서 인기 스포츠가 될 수 없다.”
[4]  

 
축구 전문가들이 보면 억지 주장일 수 있지만 필자의 제안처럼 미국 스타일의 축구를 개발하지 않으면 미국적인 상황에서 축구가 성장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인 주장은 아니다. 축구는 유럽과 남미가 주류이고 이러한 변형을 비웃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남미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이는 표준이 될 수 없고 결국 미국에서는 축구가 정착할 수 없게 된다.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스테판 지만스키·앤드루 짐벌리 (에디터,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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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발전하기 어려운 경기 외적인 요소도 분명 있을 것이다
. 스테판 지만스키와 앤드루 짐벌리스트는 ?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라는 책에서 축구와 야구의 조직은 그것이 탄생한 사회를 반영한다[5] 했는데 미국 사회가 왜 축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돈이 안 되는 종목은 투자 안한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윤추구의 문제다
.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돈을 사랑하는 나라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은 19세기에 쓴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나는 미국과 같이 돈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나라를 본적이 없다고 했다.[6]

토크빌은 또한 종교적인 신념으로 친구, 가족, 고향을 등지고 아메리칸 대륙으로 온 사람들은 그러한 정열을 부를 쫓고 즐김과 평안을 얻는 데에 쏟아붓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7]

19세기에 감지된 이러한 미국의 분위기는 20세기 그리고 21세기에도 이어졌다. 20세기 초에 미국의 각 지역을 돌아본 프랑스인 앙드레 지그프리드는 미국이 물질적인 사회이며 사람보다 물건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더 익숙하다고 지적했고 USA 투데이지는 2006 74일자에서 미국인들이 21세기들어 더욱 물질주의의 심각성을 느끼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피터 싱어 (세종서적,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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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How are we to live)’에서 너를 부유케 하라는 구호를 들고나온 레이건이 정권을 잡은 이후 미국의 부에 대한 추구는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부자 리더를 쫓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꼬집었다.
[8]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축구는 돈벌이가 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미국에서는 돈을 벌기 어려운 종목인 이유는 무엇인가
?. 경기의 중간에 쉬는 시간이 단 한 번밖에 없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스포츠를 보자. 대부분 쉬는 시간이 많다. 가장 있는 있는 스포츠인 풋볼, 야구, 농구를 보자. 모두 적어도 4번의 휴식 시간이 있다. 풋볼과 농구는 4쿼터로 나뉘어지고 야구는 9회로 펼쳐진다. 휴식 시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광고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고 구단주들의 주머니를 두툼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야구는 9회초와 말이 있어 최소한 18번의 TV나 라디오 광고를 정당하게(?)’ 내보낼 수 있고 투수가 바뀔 때도 광고를 할 수 있다. 야구가 오랫동안 미국 스포츠 넘버1’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풋볼은 경기의 다이내믹한 면 때문에 야구의 인기를 넘어서기 시작했는데 4번의 휴식 시간 외에도 각종 TV 광고 타임이 있어 TV 중계에 적합한 경기이기 때문에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Hugh Jackman places hands and feet in wet cement during ceremony in Los Angeles

미디어 분석가이자 철학자였던 마샬 맥루한은 세계적으로 일었던 축구붐은
“TV 시대의 산물이라고 했을 정도로 TV와 축구는 밀착되어 있다.[9] TV가 이윤추구에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중계권료 때문이다. 축구와 TV 미디어 황제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위 사진)은 지난 1999 1월 미국 프로풋볼(NFL)의 내셔널컨퍼런스(NFC) 6년 동안 중계하는 대가로 44억 달러(당시 한화로 42천억 원)를 지급했다.[10]

머독이 운영하는 폭스
(Fox)사는 또한 지난 2000 9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6년 동안 25억 달러를 주고 토요일 경기, 올스타게임, 디비전 시리즈, 리그 챔피언십 경기, 월드시리즈의 중계권을 따냈다.

이 밖에 폭스사의 지역 케이블 방송은 각 지역 팀과 중계권 계약을 맺어 구단들의 구단 운영을 도왔다. 물론 이는 단순히 돕는 차원은 아니다. 폭스와 같은 스포츠 방송은 야구 및 풋볼 중계를 통해 얻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러한 거액 계약을 맺는 것이다.

미국에서 방송사들이 스포츠 중계를 위해 지급하는 액수는 프로그램 예산의 15%에 이를 정도로 높은 편이다.
[11] 방송사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스포츠 중계권 획득에 혈안이 되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광고 수익이다. 슈퍼 보울의 광고 수익을 살펴보면 미국 최고의 스포츠 행사에 TV 광고 수익은 매년 크게 증가했다. 시청자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46백만 명의 스포츠 팬이 지켜봤던 1971년 수퍼 보울의 전국 TV 30초 광고비는 72천 달러였으나 10년 후에 열린 15회 수퍼 보울의 30초 광고비는 무려 275천 달러로 뛰었고 이때부터 광고단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127백만명이 시청한 1986년 슈퍼 보울의 30초 광고비는 50만 달러까지 치솟아 올랐고 1991년에 80만 달러가 되더니 1996년엔 1백만 달러를 돌파했다. 2001년에 역대 최고치인 230만달러로 치솟아 올랐던 수퍼보울 30초 광고단가는 2002년에 잠시 주춤 했다. 9.11 테러와 경제난으로 2백만 달러 밑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러나 2003년에 다시 210만 달러로 책정되면서 2백만 달러 시대를 이어갔다. 그렇다고 방송사들이 단순히 광고비 때문에 스포츠 경기를 유치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출과 수입을 따지면 손해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 이유는 시청자들이 장시간 채널 고정을 하도록 한 후에 다른 주력 프로그램을 선전하기 위해서가 두 번째 이유다. 야구 경기의 시간이 보통 3시간 안팎이고 풋볼 경기는 5시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자사의 타프로그램을 선전하기에 아주 좋다는 것도 방송사들이 주머니를 여는 주된 이유다.


김영석은 이를 스포츠 문화와 미디어 문화의 결합현상 또는 상호의존적인 공생
(symbiosis)라고 정의했다.[12] 그는 스포츠가 텔레비전과 결합하면서 텔레비전의 스포츠 방송은 단순한 스포츠에 관한 객관적 뉴스 보도가 아니라 스포츠 그 자체가 되었고, 스포츠에 대해 텔레비전은 그 존립의 근거가 되어버렸다고 설명했다.[13]

미국은 이처럼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에는 어김없이 투자를 하는 나라다. 그런데 축구는 그 이윤 추구를 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미 기업가들은 생각한다. 지난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전후반 각 45분씩을 치르는 경기를 4등분으로 나누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이는 미국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충분히 이해되는 제안이다. 전후반 사이의 휴식 시간 동안 광고를 해야 하는데 이것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휴식 시간에 TV 앞에 앉아 있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미국 내에서도 이것이 항상 문제가 된다
. 경기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미국 축구리그가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방송사와의 상호의존적인 공생이 어렵다는 것이 핸디캡이다.


축구는 또한 구단주들이 부가 수입을 올리기 힘들게 되어 있다
. 야구의 구단주들은 관중이 경기장에서 돈을 많이 쓰게 할 수 있다. 1회부터 9회까지 총 18번 자리를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식음료 판매로 꽤 많은 수입을 챙길 수 있다. 반면 축구는 자리를 뜰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

MLS Cup - Los Angeles Galaxy v Real Salt Lake
MLS 경기. 오른쪽 선수가 데이비드 베컴이다.

여기에 축구장은 야구장과는 달리 음식과 음료가 관중석으로 배달되지 않는다.
[14] 축구는 돈벌이를 위한 스포츠가 될 수 없었기에 미국의 자본가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미국에서 스포츠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머독이 메이저리그 사커(MLS)에 투자를 하지 않고 대신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을 10억 달러에 매입하려고 했던 것은(실패로 끝났지만) 미국 축구 시장의 현실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일단 팬 베이스가 넓지 않고 축구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매력을 느낄 수가 없고 여기에 미래를 위해 거액을 쓰기에는 경기 운영 방식이 미국의 자본주의 방식에 맞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 축구 저변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 프로축구리그가 탄생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지만스키와 짐벌리스트에 따르면 야구의 내셔널리그 구단들이 1894년 전미프로축구리그(American league of Professional football)를 창설했다.
[15]

야구 구단주들이 축구리그를 창설한 이유는 겨울철에 놀고 있는 야구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팬들이 야구장을 방문하면 야구에 계속 마음을 묶어 두는일이 가능한 것도 이들이 축구리그를 시작한 이유였다.
[16]

처음에는 성공하는 듯했다. 어떤 경기에는 당시로서는 많은 8천 명이 모였다. 그러나 볼티모어 구단이 영국 프로선수들을 수입한 것에 대해 미 정부가 조사하겠다고 발표하자 시즌이 중단됐고 프로축구리그는 사라졌다.
[17]

1920년대에도 미국축구리그가 창설돼 상당한 인기를 누렸고 이 리그는 1930년대에도 이어졌지만 문제는 당시 불어온 경제공황(depression)으로 리그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축구 전문가는 그 일만 없었다면 축구는 풋볼의 인기를 능가했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당시 축구의 관중 동원은 NFL을 앞섰다.

Pelé
Pelé "King of Soccer" in Maracaná Stadium by PVCG 저작자 표시비영리

이후 1990년대까지 지속되는프로리그가 세워지지 않았다. 미국 축구 리그(ASL)나 북미 프로축구 리그(NASL)가 있었지만 전국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과거 펠레, 베켄바우어, 크루이프 등을 앞세워 축구 팬들을 축구장으로 오도록 했지만 이는 단발성 인기였다. 미국은 팬 베이스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점점 미국식 자본주의에 묻힌 축구는 미국의 메이저 스포츠가 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축구가 자리 잡지 못한 정치 사회적인 이슈


축구가 미국의 주요 스포츠 대열에 들어가지 못한 다른 이유로는 정치
, 사회적인 이슈가 있다. 보통 축구는 노동자들이 좋아하는 스포츠이지만 미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면서 풀뿌리 스포츠가 되지 못했다.

프랭클린 포어에 따르면 미국에서 축구는 라틴계 이민자를 제외하면 연수입 5만 달러 이상의 가정에서 주로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18]

오래전부터 중산층 이상의 스포츠로 여겨지다보니 계층간의 갈등이 심했던 미국 근대사에서 노동자들의 미움을 샀다. 80년대에도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 양상이 첨예화되면서 문화 전쟁이 일기 시작했고 특정 스포츠나 문화가 적당히 섞이지 못하고 계층과 이념에 따라 좋아하는 분야가 확연히 구분되면서 축구는 더더욱 설 땅을 잃었다.

따라서 특정 계층이 좋아하는 스포츠는 반대 계층에서 신랄하게 비난했는데 축구는 바로 그 타겟이 됐다. 축구를 공격하는 일에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축구는 그로기 상태가 됐다.

USA 투데이지의 톰 위어 기자는 축구를 싫어하는 것이 가장 미국적인 행동이다라며 독자들에게 축구를 미워할 것을 종용했고 유명한 스포츠 토크쇼 진행자인 짐 롬은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다. 이런 경기가 TV에서 중계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
)축구 대열에 섰다.[19]

Jack Kemp
Jack Kemp by KCIvey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정치인 잭 켐프도 대표적인 축구 반대론자였다. NFL 프로 보울(올스타) 7번이나 뽑혔던 풋볼 쿼터백 출신의 켐프는 1971년부터 89년까지 뉴욕주의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데 그는 1996년에는 밥 돌의 러닝메이트로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정계의 최고 자리에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

켐프는 1986년 미국의 축구 월드컵 개최 신청을 앞두고 "미식축구는 민주적이고 자본주의적이지만 축구는 사회주의자들의 운동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이 스포츠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월드컵 주최를 반대한 바 있다.
[20]

미국은 사회주의라는 굴레가 씌어지면 절대 클 수 없는 나라다. 피터 싱어는 이에 대해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라는 명칭은 계속해서 하나의 욕설로 사용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21]


월스트리트 저널의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앨런 바라
(Allen Barra)“OK, 축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다. 쌀도 가장 있기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뭐? 아마 다른 나라들은 풋볼, 농구, 야구 리그를 운영할 능력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이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하면 축구보다 더 좋아할 것이라고 말하며 미국식 예외주의와 세계화 거부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22]


그렇다면 미국은 절대 축구가 자리를 잡을 수 없는 나라일까
? 현재 상황으로는 그렇지만 히스패닉 인구가 더 늘어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여기에 미국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은 자녀가 축구를 하도록 배려하기 때문에 여건이 갖춰진다면 축구가 도약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포어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리틀 야구에 참여한 어린이와 축구를 한 어린이를 비교해 보았더니 축구가 130만 명이 더 많았다고 한다. 여기에 히스패닉은 가톨릭의 영향으로 자녀를 많이 낳기 때문에 미국 전체 인구 중 14%를 차지하는 비율이 20%, 30%로 늘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히스패닉 2, 3세들이 미국화되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겠지만 이민 1세인 부모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는 한인 이민자들 사이에도 나타난 현상이다. 그동안 축구에 관심을 끄고 살았던 한인 이민 2세대는 2002년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 축구에 큰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미주 중앙일보의 박상우 기자는 월드컵이 미주 한인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에서 미국 땅에서 태어난
2세와 대한민국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1.5세들이 월드컵이란 이벤트에 붉게 물들며 한국인임을 재확인했다고 했다.[23]

Korean fans during 2006 World Cup Soccer
Korean fans during 2006 World Cup Soccer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32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매뉴얼 임(45. 법무사)씨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월드컵은 내가 한국인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고 UCLA 사회복지학과 문애리 교수는 스포츠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큰 힘을 갖고 있다. 월드컵을 계기로 한인들의 정체성 인식이 크게 높아져 한인사회의 큰 에너지로 활용되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미국에서 히스패닉 인구가 늘어날 수록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 미국에서 축구가 인기를 끈다면 순전히 히스패닉 덕분일 것이다. 물론 한국 이민자는 여기서 제외된다. 많은 미주 한국인은 축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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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뭇가지 2009/12/06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성도 높은 글, 갈수록 더 재미 있습니다.

  2. 세계 최고의 스포츠 2010/02/17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구만을 사랑하는 한국인 여기있습니다 그리고 순수 축구팬 우리나라에 꽤 많은데....마지막 글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군요 그리고 글이 굉장히 편협적이군요....미국인들의 자신들의 스포츠가 지루해서 인기 없는 현실을 인정 못하고 미국인 답게 온갖 변명과 뒤틀린 논리를 다 갖다대는 버릇들 그런 말들이 이 글에 총집합 되어있군요.

  3. 세계 최고의 스포츠 2010/02/17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풋볼은 축구지 미식축구가 아닙니다. 미식축구는 그리디론이라고 불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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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 특집 라인업

결과 중심주의 자본 중심주의의 한국 언론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도 문제가 있다
. 한국 언론의 축구 관련 기사는 온통 결과 중심주의다. 결과 중심주의에 관해 필자가 축구 분석가인 최형준 씨의 조언으로 쓴 칼럼을 소개한다.

 

어떤 분야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은 항상 결과를 먼저 보게 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를 잘 모르면 '이겼나 졌나'에만 관심을 두게 마련이다.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만은 아니지만 축구 자체에 오랫동안 관심을 뒀던 팬이라면 이제는 그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축구를 볼 때 꼭 봐야 할 공식 같은 것이 있다. 1순위: 압박축구 ▶2순위: 팀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나 ▶3순위: 승패 및 응원 ▶4순위: 천운(天運).

독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팀은 한국이니 한국을 예로 들면 좋을 것 같다.


한국은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 최종 평가전인 가나전에서 경기 내용은 좋았지만 결과(1-3 패배)가 좋지 않아 언론의 집중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가나전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경기 내용이었다. 가나전을 1-4순위의 내용으로 살펴보았다.


1
순위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압박축구라고 했다. 한국은 과연 압박을 잘했나? 선수들이 체력이 떨어져서 때로는 중원 압박이 느슨해지는 현상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프레싱(pressing, 압박)이 잘된 편이었다. 체력 회복이 되면 느슨해지는 빈도가 줄어들어 압박이 전체적으로 잘 된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한국 선수들이 압박의 중요성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1:1 대결에서 밀리면 압박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1순위 공식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는 어느 정도 축구의 기초가 다져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줄기세포를 예로 든다면 원천 기술은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한국은 이 원천 기술 없이 사이언스에 논문을 제시한 줄기세포 연구팀과 같았다.

International Friendly - South Korea v Los Angeles Galaxy
    
 2순위로 봐야 할 것은 과연 감독이 팀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느냐이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은 일단 히딩크와 비슷한 점이 많이 있었다. 기술적인 면과 세계 축구의 이해도 면에서는 손색이 없는 지도자였다. 그래서 제1순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답변을 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아드보카트가 히딩크에 비해 준비시간이 부족했고 일정관리를 할 때 선수들의 컨디션이 최고 정점에 이르게 했느냐인데 이는 독일 월드컵 1차전인 토고전을 보면 파악할 수 있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아쉬웠던 점은 월드컵 기간중 러시아 프로구단과의 계약설이 터진 것이었는데 이는 한국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됐다. 유럽 선수라면 개의치 않고 넘어갈 일이지만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선수의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이는 한국 선수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예라고 할 수 있다.

         
 
1,2
순위에 대한 평가는 이성적인 것으로 자신이 진정한 축구팬이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를 볼 때  꼭 가져야 할 평가의 우선 순위다. 1순위와 2순위를 잘했는데도 졌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쉬운 패배'가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잘하고도 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축구를 다루는 언론 기자들은 이것을 건너뛰고 제3순위로 넘어갈 때가 너무 많다. 원천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매진하지 않고 사이언스지로 건너뛰는 것과 같다. 1,2순위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 이기기를 바라며 응원을 하는 것이 바로 제3순위다. 열심히 응원하는 것은 바로 제3순위에 해당하고 이는 이성이 아닌 감성이다. 한국 언론은 그런데 이성을 뒤로 제쳐놓고 감성만 자극하는데 이는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 가나전이 끝난 후 확연히 드러났다. 감성만 자극하는 평가는 한국 선수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마지막인 제4순위는 천운이다. 이는 영적인 부분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기도했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나. 종교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하늘의 운을 바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선수들이 잘 싸워서 20번 슛을 했는데 5번은 골대를 맞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천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응원하면서 이 4가지 공식을 기억해두고 보자. 축구 보는 감각이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1]


 
한국 언론의 결과주의적인 평가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와 프랑스전에서 한국은 좋은 경기를 펼치지 못했지만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좋은 부분만 유난히 강조했다. 추켜 세우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동아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인 정희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언론의 월드컵과 관련된 잘못된 보도 행태를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로컬 버스 Local Bus
로컬 버스 Local Bus by 黒忍者 저작자 표시비영리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지은이 정희준 (개마고원,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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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월드컵 첫 경기인 토고전이 열리는 13일이 4년 전 양주군 효촌리의 두 소녀 미선이, 효순이가 우리를 떠난 날이라고 회고하며 함성을 내지르기 전에 잠시라도 그들을 추모하는 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당시 '월드컵 치매'에 걸려 그들을 모른 척(?) 했던 우리의 모습을 나무라면서. 그러나 또 다른 몇몇 신문들은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 5일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된 날이지만 이들은 FTA보다는 가나와의 평가전을 1면에 내걸었다. 그렇다. '대∼한민국' '대한민국'보다 더 중요하다
.”[2]

 

지나친 상업주의


정희준 교수는 한국 언론이 축구를 단순히 즐기는 차원에서 홍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말아 먹는 분야로 만들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

 

자본과 미디어가 오직 월드컵만 살포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불꺼진 사회(black-out-society)'가 될 위기에 처했다. 영어의 'black out'은 정전, 소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시적인 의식의 상실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군사적 개념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는 본격적 미사일 공격에 앞서 먼저 핵공격으로 적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교란 전술이다. 5일 시작된 한미FTA 협상은 초고속으로 진행될 것이다. 월드컵은 한국사회를 '블랙 아웃'시킬 것인가. 월드컵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의식을 상실하고 방어신경이 무력화된 우리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3]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인 이훈은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축구 응원과 애국을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 같다며 ‘애국자’가 축구 응원을 할 수 있지만 축구팀을 응원하는 사람이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자.

Korean fans during 2006 World Cup Soccer
Korean fans during 2006 World Cup Soccer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치우침이 나타난 광적인 현상은 우리 사회를 흥분의 상태로 몰아넣으며 비이성적 비약의 결과를 낳는다. 거리에서 응원을 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정열적 응원’을 하는 것이 일본 식민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의 역사적 정서와 동일시되면서 ‘애국적 행동’과 혼돈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본질을 왜곡하거나 비약하는 것은 늘 문제를 야기한다. 현실의 문제를 망각시키거나 극단적 애국과 국수주의를 반영하여 사회의 건전한 이성을 마비시킨다.”[4]

감성을 자극하는 일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성과 영성을 균형되게 자극하지 않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신나게 즐기는 한국인을 욕할 수는 없다. 신명나게 노는 것은 한국인의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명나는 놀이를 이용해 한몫 챙기겠다는 심산, 한 자리 차지하겠다는 심보를 가진 사회 지도자와 언론을 판단하는 이성을 한국인은 유지해야 한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축구인 차범근은 중앙일보 한 칼럼에서 방송과 신문에 대해 따끔한 말을 했다.

그는 “방송이나 신문은 이제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역할을 조금씩 바꿔야 한다. 냉정하게 우리를 볼 수 있는 객관성도 심어줘야 한다. 많이 알지 않고는 그들에게 축구를 쉽게 이해시킬 수 없다.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  차범근은 이어 “국민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분석을 했다고 해서 한 해설위원이 그 다음날로 마이크를 놓아야 하는 일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상업주의에 끌려 가는 언론의 문제를 꼬집었다.


by gypsycrystal 저작자 표시

연세대 영상대학원의 윤태진 교수도 중앙일보가 마련한 문화 비평가 대담에서 “붉은색으로 도배된 TV 편성표를 보라. 뉴스까지 월드컵 특집으로 편성표에 찍혀 나오는 것은 코미디다. 16강에 진출했다면 1년 평균 수익의 절반 이상을 중계 광고료로 얻었을 것이다.”라며 월드컵을 상업주의 논리로 풀어나간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6]

돈을 벌겠다는 것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때 사회는 미쳐만 갈 것이다. 아래에 소개되는 내용은 필자가 모 언론에 기고한 글이다. 그러나 데스크가 의견을 달리해 지면에 실리지는 못했다. 이 글로 한국 축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 2장을 마친다.

 “1984년 LA 올림픽 당시의 일이다. 필자의 지인은 당시 올림픽 주경기장 앞에서 T-셔츠와 기념품을 팔아 한 달 동안 수십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그의 경제활동을 욕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이는 축제를 통해 돈을 번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게 그거인 것 같은데 축제를 '통해' 돈을 버는 것과 축제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방송사로부터 월드컵 중계권료를 받는 것은 축제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지만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중계권료를 받아내는 것은 축제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다.

 월드컵 보너스를 받는 선수들은 축제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지만 월드컵 수당이 나오지 않는다고 대회 시작 며칠 전에 훈련을 거부하는 것은 축제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행위다. 토고정부가 FIFA로부터 월드컵 배당금을 받는 것은 축제를 통해 돈을 버는 일이지만 배당금을 선수들에게 나눠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축제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의도다. 


by gypsycrystal 저작자 표시

 붉은악마 응원단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홍보를 해주는 것은 축제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다. 순수한 축제가 돈 잔치에 희생된다는 비난이 들끓자 붉은악마 측은 "다음부터는 기업의 스폰서를 받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축제에 돈이 개입되면 순수함을 잃는다는 것을 붉은악마 관계자들은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또한 월드컵 경기에 입장료를 받는 것은 축제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지만 입장료를 부담스럽게 올리는 것은 축제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다. 독일의 한 축구 전문가는 "입장료가 워낙 비싸 블루칼라 시민들이 경기장에 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훌리건이 경기장에 출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쓴웃음을 짓게 한 바 있다.

 선수들이 월드컵 포상금을 받는 것은 축제를 통해 돈을 버는 일이지만 이를 대단한 일인 양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보도는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축제를 현금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축제 이용 마인드'를 갖게 한다. 이런 기사는 단신으로 처리하는 것이 축제를 존중하는 자세다.

 한국 언론은 연일 월드컵 보도로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는 축제를 통해 돈을 벌려는 건전한 경제활동이지만 축구 소식을 신문이나 방송 전체에 도배하려는 것은 축제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것이다. 한국 3대 종합 일간지 웹사이트의 초기화면 상단 자리가 연일 월드컵 보도 기사로 도배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한국의 모개그맨은 '뉴스는 뉴스다워야 뉴스지'라는 유행어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를 패러디해보면 다음과 같다. '축제는 축제다워야 축제지' (기사 작성 2006년 6월14일)


[1] 박병기, ‘축구를 보려면 압박 여부, 장점 발휘, 응원, 천운 ‘4가지 공식’’, 2006 610일자, 중앙일보 미주판 스포츠면.

[2] 정희준, <월드컵 광풍, 신문과 방송의 동침'대한민국'보다 중요한 '~한민국>, 2006 67,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36770

 

[3] 같은 글

[4] 이훈, <축구 응원과 애국은 다르다>, 한겨레 신문 웹사이트,  2006 37,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6899.html

[5] 차범근, ‘”두리야 살살해황선홍 말에 담긴 뜻은…’, 2006 629, 중앙일보 B-3.

[6] 배영대, “2002 돌발 드라마’…2006년은 준비된 축제’’, 2006 625, 중앙일보 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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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아대학교 이곳에 있네요.

    Tracked from 박사님 2009/12/13 00:01  삭제

    "동아대학교 이곳에 있네요."가 뭐길래...(클릭이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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