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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스캇 롤렌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10/02/04 21:16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스콧 롤렌 (Scott Bruce Rolen) / 외국야구선수
출생 1975년 4월 4일
신체 키195cm, 체중109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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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sports.com이 2002년 발행한 빅리그 매거진의 5월호 기사입니다. 스캇 롤렌에 관한 특집 기사입니다. 당시에는 롤렌을 롤런으로 표기했습니다. 롤런은 미국식의 발음입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큰 크기로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2010년에 쓰는 후기

롤렌은 이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신시내티 레즈를 거쳤다. 이 구단들을 거치면서 그는 타율 2할8푼4리, 홈런 283개, 1129타점, 114도루, 1810안타를 기록했다. 그는 올스타 선정 5회,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 1개(2006년), 골드글러브 트로피 7개의 기록을 보탰다.


다음은 스캇 롤렌의 통산 성적이다 (출처: 베이스볼 레퍼런스)

Year Age Tm Lg G PA AB R H 2B 3B HR RBI SB CS BB SO BA OBP SLG OPS OPS+ TB GDP HBP SH SF IBB Pos Awards
1996 21 PHI NL 37 146 130 10 33 7 0 4 18 0 2 13 27 .254 .322 .400 .722 90 52 4 1 0 2 0 5
1997 22 PHI NL 156 657 561 93 159 35 3 21 92 16 6 76 138 .283 .377 .469 .846 121 263 6 13 0 7 4 *5 RoY-1
1998 23 PHI NL 160 711 601 120 174 45 4 31 110 14 7 93 141 .290 .391 .532 .923 139 320 10 11 0 6 6 *5 MVP-20,GG
1999 24 PHI NL 112 497 421 74 113 28 1 26 77 12 2 67 114 .268 .368 .525 .893 119 221 8 3 0 6 2 *5
2000 25 PHI NL 128 541 483 88 144 32 6 26 89 8 1 51 99 .298 .370 .551 .920 129 266 4 5 0 2 9 *5 GG
2001 26 PHI NL 151 653 554 96 160 39 1 25 107 16 5 74 127 .289 .378 .498 .876 127 276 6 13 0 12 6 *5 MVP-24,GG
2002 27 TOT NL 155 667 580 89 154 29 8 31 110 8 4 72 102 .266 .357 .503 .860 129 292 22 12 0 3 4 *5 AS,GG,SS
2002 27 PHI NL 100 438 375 52 97 21 4 17 66 5 2 52 68 .259 .358 .472 .830 123 177 12 8 0 3 2 5
2002 27 STL NL 55 229 205 37 57 8 4 14 44 3 2 20 34 .278 .354 .561 .915 139 115 10 4 0 0 2 5
2003 28 STL NL 154 657 559 98 160 49 1 28 104 13 3 82 104 .286 .382 .528 .910 138 295 19 9 0 7 5 *5 AS,GG
2004 29 STL NL 142 593 500 109 157 32 4 34 124 4 3 72 92 .314 .409 .598 1.007 157 299 8 13 1 7 5 *5 AS,MVP-4,GG
2005 30 STL NL 56 223 196 28 46 12 1 5 28 1 2 25 28 .235 .323 .383 .706 84 75 3 1 0 1 1 5 AS
2006 31 STL NL 142 594 521 94 154 48 1 22 95 7 4 56 69 .296 .369 .518 .887 126 270 10 9 0 8 7 *5 AS,GG
2007 32 STL NL 112 441 392 55 104 24 2 8 58 5 3 37 56 .265 .331 .398 .729 89 156 13 5 0 7 2 *5
2008 33 TOR AL 115 467 408 58 107 30 3 11 50 5 0 46 71 .262 .349 .431 .780 108 176 12 10 0 3 2 *5
2009 34 TOT MLB 128 535 475 76 145 36 1 11 67 5 4 45 62 .305 .368 .455 .823 117 216 4 7 0 8 1 *5
2009 34 TOR AL 88 373 338 52 108 29 0 8 43 4 2 26 42 .320 .370 .476 .846 124 161 2 4 0 5 1 5
2009 34 CIN NL 40 162 137 24 37 7 1 3 24 1 2 19 20 .270 .364 .401 .766 102 55 2 3 0 3 0 5
14 Seasons 1748 7382 6381 1088 1810 446 36 283 1129 114 46 809 1230 .284 .370 .498 .868 124 3177 129 112 1 79 54
162 Game Avg. 162 684 591 101 168 41 3 26 105 11 4 75 114 .284 .370 .498 .868 124 294 12 10 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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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케빈 브라운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10/02/02 16:25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ICCsports.com은 2002년에 빅리그라는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2002년 5월호에 실린 케빈 브라운 특집을 소개합니다.







2010년에 쓰는 후기

케빈 브라운은 1999시즌에 18승9패에 평균 자책점 3.00을 기록해 "역시 브라운!"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계속 부상에 시달렸던 브라운은 2003년에 14승9패, 평균 자책점 2.39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덕을 봤다는 의심을 받았다.

브라운은 2003년 11월11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됐다. 양키스는 그 대가로 제프 위버와 옌시 브라조반을 다저스로 보냈다. 양키스에서 2004년 시즌을 보낸 브라운은 10승6패, 4.09의 평범한 성적을 냈다. 브라운은 2004시즌 후반부에 조 토리 감독과 대화를 나눈 후 화가 나자 벽을 쳤는데 왼손을 그만 다치고 말았다.

브라운은 2005년 복귀를 했다. 하지만 역시 부상으로 인해 4승7패, 평균 자책점 6.50에 그쳤다. 브라운은 2006년 2월20일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현재 조지아주 메이큰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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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쿼터백'하면 마이클 빅, 빈스 영 등 흑인 쿼터백이 생각난다. '달리는 쿼터백'은 주로 흑인 선수들이다. 흑인 쿼터백이 아닌 선수 중 꾸준히 러싱 경기를 이끄는 쿼터백은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Tim Tebow

 미식 축구 역사에서 '달리는 백인 쿼터백'은 거의 없었다. 몇 년 동안 편견을 완전히 없앤 선수가 있었는데 주인공은 팀 티보(2010년 2월 현재 플로리다대 졸업반). 티보는 플로리다대에서 4년 동안 하이즈먼 트로피 수상(2007년) 및 하이즈먼 트로피 수상 후보 등재 2회 등 화려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티보는 1학년 때부터 4학년 쿼터백인 크리스 리크와 '플래툰 시스템'에서 출전을 한 바 있는데 당시 티보는 소속 학교의 우승에 공을 세운 바 있다.

 4학년이었던 리크가 패스 위주의 경기를 한 선수였기 때문에 러싱 공격이 필요할 때면 교체돼 뛰었던 티보는 러싱 터치다운(TD)을 무려 8개나 기록했다. 리크가 졸업한 후 주전 쿼터백 자리를 꿰어찬 티보는 이후 3년 동안 각종 쿼터백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2009시즌에 생애 러싱 터치다운 51개째를 기록해 컨퍼런스 기록을 경신했다. 러싱 터치다운은 보통 러닝백이 기록하기 마련인데 티보는 쿼터백으로서 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티보가 워낙 잘 달리는 선수라 상대팀 수비수들이 티보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공격수는 자연스럽게 오픈 공간을 만들 수 있어 비교적 쉽게 전진을 할 수 있었다. 티보의 존재로 플로리다는 4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낼 수밖에 없었다. 


Tim Tebow

 티보는 백인이지만 힘이 넘치는 선수다. 그는 "역기 들기(bench press)에서 학교 기록을 세우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몸 만들기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플로리다의 공격 코디네이터인 댄 멀른은 "티보는 라인배커가 될 선수였는데 쿼터백이 됐다"고 소개했을 정도다. 어번 마이어 플로리다대 감독은 티보를 "플로리다 공격의 스파크플러그(점화선)"라고 극찬했다.

 필리핀 기독교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났던 티보는 케이블 방송인 ESPN-TV '선택된 자(The Chosen One)'라는 프로에 출연해 인기가 급상승한 바 있다. 티보는 방학이 되면 아시아를 방문해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필리핀에서 플로리다대 인기는 높은 편이다.  

 그의 활기 넘치는 경기 운영 방식은 많은 대학 풋볼 팬들을 매료시켰는데 풋볼 전문가들은 "그래도 패싱은 시원찮다"며 그의 능력을 평가절하한 바 있다. 그러나 티보는 고교시절부터 패스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플로리다주 고교 풋볼의 모든 패싱 기록을 갈아치운 바 있다. 티보는 달리면서 패스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티보가 공을 들고 달릴 때 상대 수비수들은 3가지 공격 방식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한다. 일단 티보가 직접 공을 들고 달리는 상황을 대비해야 하고 긴 패스를 주의해야 한다. 티보는 긴 패스를 잘하는 쿼터백이다. 또한 러닝백에 공을 건네주는 것도 조심해야 했는데 이유는 플로리다의 러닝백 자리에 좋은 선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플로리다가 한 경기에 50점 이상 기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바로 티보가 공격의 스파크플러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Tim Tebow

 티보는 고등학교 때까지 홈스쿨에서 공부했다. 즉 집을 학교로 하는 제도에 따라 공부를 했던 것. 그러나 풋볼을 하고 싶어서 공부는 집에서 하고 풋볼은 인근 고등학교에서 했다. 처음에는 이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플로리다주에서는 그것이 인정됐다. 그래서 티보는 홈스쿨을 하면서 팀 스포츠를 하길 원하는 아이들에게 표본이 된 선수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다른 주(state)에서도 흥미를 보였고 소위 '팀 티보 법안'이 몇몇 주에서 통과되거나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팀 티보 법안'은 홈스쿨에 있는 아이들이 인근 학교에서 운동 선수로 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티보는 홈스쿨 아이들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낙태 반대에 앞장 섰다. 티보는 2010년 슈퍼보울 광고에 출연해 낙태 반대의 뜻을 밝히게 된다. 티보가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 팸(Pam)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의사의 낙태권고를 받았다. 사산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의사는 경고했다. 팸은 그러나 끝까지 아이를 지켰고 건강한 티보가 태어났다. 낙태 반대자들에게는 완벽한 예가 되었기에 티보의 이야기는 미국인들 사이에 회자됐다.

Tim Tebow

티보는 2010년 4월에 열리는 NFL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한데 어떤 전문가는 그가 톱10 안에 지명될 것으로 보고 있고 다른 전문가는 2라운드 또는 3라운드 지명을 예상했다. 전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감독인 토니 던지는 "그는 톱10 지명 선수다"라고 말했고 ESPN의 풋볼 전문가인 멜 카이퍼는 "그는 프로에서는 주전 쿼터백으로 뛰게 어렵다"고 전망했다.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존 그루덴 감독은 "티보는 풋볼 경기에 혁명을 가져올 선수"라고 평가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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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서재응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10/01/30 22:04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메이저리그 승리를 따낸 6번째 한국인인 서재응의 이야기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지난 99년, 투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는 박찬호와 같은 화려함이 아닌 암울함 속에서 4년간 미국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2003년 첫 승을 따냈다. 그것은 다른 투수의 10승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이었다. 첫 승이 확정된 후 서재응은 활짝 웃었다. 전에는 볼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이 섞인 웃음이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New York Mets vs. Los Angeles Dodgers

# 찬호형 보고 메이저리그행 결심

 98년 겨울. 정확히 5년 전이다. 나는 당시 에이전트였던 전영재씨의 사무실에서 서재응을 만났다. 당시에는 형(서재환)과 같이 있었다. 97년 12월, 동생과 함께 메츠 구단에 함께 입단한 서재환은 이후 한국으로 돌아갔고 대학에서 코치수업을 받았다. 2001년 성균관대에서 코치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후 주엽 고교, 화순고교, 속초상고, 광주송원대학, 성남서고교를 거쳐 서울고교 코치로 활동했다.

서재응은 98년 만남에서 '메이저리그 진출 동기는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대학(인하대)에서 야구할 때 박찬호 형 경기를 자주 보게 되면서 미국에 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찬호 형이 승리를 거두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2-3년 후에 팬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많은 응원을 부탁한다"고 말하며 자신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시 그의 목표는 '사이영상 수상'이었다.

# 부상이 발목 잡아

 같은 해 봄. 플로리다주 스프링캠프장. 서재응은 박찬호와 맞대결을 펼쳤다. 당시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는 이 두 선수의 대결은 최대 관심사였다. 서재응은 5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아웃으로 돌려세우는 등 쾌투를 하며 당시 메츠 감독이던 보비 발렌타인을 흐믓하게 했다. 스타탄생을 알리는 경기였다.

 그러나 그는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는 99년 5월 수술대에 올라섰다. 토미 존 수술(팔꿈치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년간의 고된 재활기간에 돌입하게 됐다. 그는 너무 쉽게 팬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갔다. 2-3년 후의 빅리그 행은 한순간의 꿈이 되고 말았다.


# 2년간의 재활 그리고...

 그가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선배 박찬호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고교 1년 후배 김병현은 99년 메이저리그 데뷔해 유망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에게 2년은 암울 그 자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성격은 긴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게 했다. 

 2001년. 그는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컴백하자마자 그는 쾌투를 했고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 '퓨처스 올스타' 전의 선발투수로 낙점되는 등 화려한 재기를 했다. 나는 당시 재활 치료에 성공한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서재응은 "수술 후 구속은 많이 떨어졌다. 87-88마일 정도가 스피드건에 찍힌다. 지금은 제구력으로 승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서재응은 "랜디 존슨의 파워 피칭을 좋아해 그와 같은 정통파 투수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는 못했다. 그가 그렉 매덕스와 같은 컨트롤 투수가 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 고속 승격

 2001년 시즌에 싱글A부터 시작 트리플A까지 올라가는 고속 승격을 했다. 사실 그는 팔꿈치 수술만 아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을 투수였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2년. 빅리그가 멀지 않은 트리플A에서 시작한 그는 확실히 기교파 투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서재응은 밝은터와의 인터뷰에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격적인 피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대를 압도하는 것 보다는 두뇌 피칭으로 승리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2002년 7월21일. 그는 마침내 메이저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서재응의 메이저리그 잔류는 '일일천하'로 마감됐지만 그의 미래는 밝은 것으로 평가 됐다. 비록 아마추어 때의 강속구를 뿌리지는 못하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요리할 수 있는 완벽한 제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2003년

 2003년 시즌이 시작됐을 때 한국 팬들과 언론의 관심은 서재응이 아닌, 박찬호, 김병현, 최희섭, 김선우, 봉중근에게 쏠렸다. 서재응은 잘해야 트리플A 선발투수 정도로 분류됐다. 

 그런 그가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의 피칭 내용이 스티브 필립스 단장과 아트 하우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서재응은 무려 8:1에 가까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메츠의 제5선발투수 자리를 꿰차는 이변을 연출했다. 고생을 아는 선수는 성공의 단맛을 오래 느낄 수 있다. 최고의 자리에서 밑바닥까지 내려와 부활한 그의 투혼이 놀랍기만 했다.



# 그 후

2003년 그는 9승12패, 평균 자책점 3.82의 호성적을 남겼다. 메츠에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2004년에도 24경기에 등판(21경기 선발) 5승10패, 4.90을 기록했다. 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메이저리거로서 자리를 잡았다. 2005년은 최고의 시즌이었다. 그는 8승2패, 2.59의 놀라운 성적으로 서재응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렸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2006년에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됐고 이후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었다.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그는 2007년을 끝으로 미국 야구와 작별인사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통산 성적은 28승40패, 평균자책점 4.60이었다.




# 한국으로 복귀

 2007년 탬파베이에서 방출된 서재응은 2007년 12월17일 기아 타이거즈와 계약금 8억, 연봉 5억, 옵션 2억 원 등 총 15억 원에 계약을 맺었다. 한국으로의 U턴이었다. 첫 시즌에 그는 5승5패로 부진했다. 2009년에도 그는 5승4패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서재응의 메이저리그 성적(베이스볼 레퍼런스)]

Year Age Tm Lg W L W-L% ERA G GS GF CG SHO SV IP H R ER HR BB IBB SO HBP BK WP BF ERA+ WHIP H/9 HR/9 BB/9 SO/9 SO/BB Awards
2002 25 NYM NL 0 0 0.00 1 0 1 0 0 0 1.0 0 0 0 0 0 0 1 0 0 0 3 0.000 0.0 0.0 0.0 9.0
2003 26 NYM NL 9 12 .429 3.82 32 31 0 0 0 0 188.1 193 94 80 18 46 11 110 6 0 2 806 110 1.269 9.2 0.9 2.2 5.3 2.39
2004 27 NYM NL 5 10 .333 4.90 24 21 1 0 0 0 117.2 133 67 64 17 50 7 54 2 1 0 512 87 1.555 10.2 1.3 3.8 4.1 1.08
2005 28 NYM NL 8 2 .800 2.59 14 14 0 1 0 0 90.1 84 26 26 9 16 0 59 1 0 2 363 158 1.107 8.4 0.9 1.6 5.9 3.69
2006 29 TOT MLB 3 12 .200 5.33 36 26 5 0 0 0 157.0 197 101 93 31 56 4 88 4 1 5 707 86 1.611 11.3 1.8 3.2 5.0 1.57
2006 29 LAD NL 2 4 .333 5.78 19 10 5 0 0 0 67.0 75 45 43 14 25 1 49 1 1 1 296 78 1.493 10.1 1.9 3.4 6.6 1.96
2006 29 TBD AL 1 8 .111 5.00 17 16 0 0 0 0 90.0 122 56 50 17 31 3 39 3 0 4 411 92 1.700 12.2 1.7 3.1 3.9 1.26
2007 30 TBD AL 3 4 .429 8.13 11 10 1 0 0 0 52.0 84 53 47 11 16 1 28 4 0 1 248 56 1.923 14.5 1.9 2.8 4.8 1.75
6 Seasons 28 40 .412 4.60 118 102 8 1 0 0 606.1 691 341 310 86 184 23 340 17 2 10 2639 94 1.443 10.3 1.3 2.7 5.0 1.85

[서재응 프로필]

▶생년월일: 77년5월24일생
▶키ㆍ몸무게: 182cm, 93kg
▶투타: 우투 우타
▶혈액형: A형
▶취미: 음악 감상
▶특기: 농구
▶좋아하는 음식: 된장찌개
▶좌우명: 최선을 다하자
▶출신교: 하정 초등-충장중-광주일고-인하대 법학과 2학년 중퇴
▶가족관계: 서병관(부), 최경자(모)씨 사이의 2남 1녀중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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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제프 사마자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10/01/26 16:51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세르비아계의 미국인인 제프 사마자(Samardzija)는 노터데임 대학 재학시절 풋볼팀의 와이드 리시버로 활약했다. 

그는 2006 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컵스에 의해 5라운드에 지명된 바 있다. 프로 진출을 하면 아마추어 자격을 잃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종목이 다르면 괜찮다. 사마자는 5라운드에 지명됐지만 이는 풋볼과 야구를 병행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진 결과였다.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당시 그를 최고의 유망주 20위로 선정한 바 있다. 투수인 사마자는 노터데임 출신 투수 중 역사상 4번째로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는 영광을 안았다. 오른손 투수인 사마자는 당시 노터데임의 선발투수로 15경기에 선발 등판해 8승2패, 평균 자책점 4.33을 기록했다. 대학 통산 성적은 21승6패, 평균 자책점 3.82였다. 

 사마자는 그러나 대학시절에는 풋볼 선수로서 더 잘 알려졌다. 노터데임이 워낙 유명한 풋볼팀이고 그는 이 팀의 훌륭한 와이드 리시버(WR)이기 때문이었다. 풋볼 전문가들은 그가 2007년 열리는 NF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마자는 개인 통산 26개의 리시빙 터치다운을 기록해 학교 기록을 갈아치운 바 있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1,2학년 때 출전 기회가 없어서 학교 기록을 1년 6개월 만에 경신한 점이다. 그는 프로에서 야구와 풋볼을 병행할 계획이었으나 풋볼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2007년 1월19일 그는 NFL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시카고 컵스와 5년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서에는 트레이드를 하지 않는다(no-trade clause)는 조항이 있었다. 계약 6번째 시즌은 컵스가 옵션이 있는데 이 옵션을 이행할 경우 사마자의 총 계약액은 1,650만 달러에 달하는 특급 수준이 된다. 



 사마자는 싱글A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우완투수인 그는 첫 시즌에 3승8패, 평균자책점 4.95로 평범한 시즌을 보냈지만 2007년 8월3일 더블A로 승격했고 여기서 6경기에 나와 3승3패, 3.41을 기록했다. 

 사마자는 2008년 6월23일 트리플A로 올라갔고 여기서 4승1패, 3.13의 호성적을 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7월25일 그는 메이저리그로 승격됐다. 사마자는 그러나 2009년 시즌을 트리플A에서 시작했다. 2008년과 2009년은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를 오가는 시간이 계속됐다. 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2승3패, 5.20이다. 

 96-99마일의 빠른 공을 던지는 사마자는 2010년에 시카고 컵스의 선발투수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선수다.

 사마자는 자신이 세르비아계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의 조부는 지난 1940년 미국에 이민을 왔기 때문에 혈통은 별 의미가 없지만 사마자 가족은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마자 프로필
키: 6피트5인치 몸무게: 216파운드
포지션:  투수 
생년월일:  01/23/1985
출생지:  인디애나주 메럴빌 
출신교:  밸파레이소 고교, 노터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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