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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환각'이 없었던 이유

BK Column | 2010/03/09 23:00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최근 열린 대회 중 가장 차분히 진행됐다. 이유는 SBS가 올림픽을 단독으로 중계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한국의 3대 공중파 방송과 이들이 운영하는 케이블 및 인터넷 방송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동시에 올림픽에 올인했기에 다수의 한국인이 ‘올림픽 환각(hallucination)’에 빠졌지만 이번에는 적당히 즐기면서 적당히 흥분하면서 보냈다.



공중파 방송이 동시에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면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올림픽 환각에 빠지게 된다. TV를 켜면 온통 올림픽 중계이니 국민은 올림픽을 봐야 하고 들어야 하고, 읽어야 하고, 이야기 나눠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올림픽 환각이다. 환각에 빠지면 나라가 온통 올림픽에 몰두한다. 누가 억울하게 죽어도 뒷전이다. 그리고 모두가 전문가가 되고 정작 진짜 전문가들은 축제의 마당에서 뒷전으로 밀려난다. 환각에 빠지면 정상적인 상태도 돌아오는데 힘이 든다.

한국은 2년마다(하계+동계) 올림픽 환각, 그리고 4년마다 월드컵 환각으로 휘청댔는데 이제부터는 그런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SBS의 독점 중계로 시청자들이 좋은 해설을 골라들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SBS는 독점 중계를 하는만큼 최고의 해설자에 마이크를 건네주는 날이 올 것이다.

이번 올림픽이 좋았던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메달 색깔에 따라 욕을 먹는 일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금메달이 아니면 ‘아쉬운 은, 아쉬운 동’이라는 표현을 너무 자주 들었고 은, 동메달리스트는 마치 역적처럼 여겨졌지만(특히 쇼트트랙에서)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메달 색깔에 관계 없이 모두 기뻐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쇼트트랙의 경우 금메달
2개로 사상 최악의 성적을 냈지만 국민은 이를 질타하기보다는 은, 동을 많이 따낸 것을 기뻐했다. 물론 한국 쇼트트랙은 파벌주의가 최강국에서 내려앉는 결과를 낳았지만 이는 국내적인 문제이고 올림픽 레벨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SBS는 대회 전반적으로 금메달에 집중하지 않고, 메달을 받으면 축하해주는 분위기를 연출해 박수를 받을만했다. 또한 메달리스트가 아닌 이규혁에 스포트라이트를 주면서 바른 여론을 이끌었다.

일부 아나운서와 해설가의 수준 낮은 방송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여론을 이끌고 간 점은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SBS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독점 중계하는 것은 여러 모로 바람직하다. 이유는 타 방송사들은 다른 종목(예를 들어, 야구와 농구)에 더 집중할 것이고 이는 균형된 스포츠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만큼 전문성도 더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주요 이벤트일 때) 농구는 ABC-TV, 야구와 풋볼은 FOX-TV, 올림픽은 NBC-TV, 월드컵은 ESPN-TV 등으로 나뉘어져 차별화와 전문성이 이뤄졌다. 해설가들의 이동이 이뤄져 해설을 잘하는 전문가들이 종목별로 방송사를 옮겨갔고 시청자들은 최고의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타 방송사들이 올림픽과 월드컵의 중계권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외화를 낭비하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 과거 박찬호 경기 및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권도 그렇게 해서 치솟아 올랐고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 야구 팬들이 메이저리그 경기를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중계권료는 높이 오르고 시청률이 떨어지자 공중파 방송사들은 독점 중계권을 포기했고 지금은 메이저리그 경기를 전국방송으로 볼 수 없게 됐다.  

결론은 이번 밴쿠버 올림픽은 가장 이상적인 여론 형성과 반응으로 국민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을 줬다고 할 수 있다. 국민에게 균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줬고 올림픽 기간에 국민에게 다른 문화 장르를 접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사진: 뉴스뱅크 블로거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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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현명한 양키스행 결정

BK Column | 2010/02/23 22:39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박찬호는 역시 현명한 선수인 것 같다.

박찬호는 2010 222일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뉴욕 양키스 행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연봉은 120만 달러 수준이고 30만 달러가 옵션이라고 한다. 그리고 양키스에서 구원투수로 뛸 가능성이 크다.



박찬호는 몸값도 선발자리도 다 포기하고 열정을 택했다
. 야구에 대한 열정이 그가 2010년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점선 무늬) 유니폼을 입도록 했다.

그도 고민했을 것이다. 연봉을 좀 더 받고 싶었을 것이고 선발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 시카고 컵스에서 선발 자리를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양키스에서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최고의 구단이다. 2009년 시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돼 다시 최고의 자리로 올라선 구단이다. 박찬호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한 집념도 보이지만 최고의 명문 구단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열정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양키스 팬들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공 하나 하나에 집중하며 모멘텀이 바뀌는 시점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을 한다. 잘 못하면 양키스 선수에게도 야유를 퍼붓는다. 잘하면 엄청난 칭찬을 받는다.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팬들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이곳에서 팀에 기여한 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다면 환상적인 엔딩이 된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안 좋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미국에서 이미지를 말하는 것임) 마무리를 잘 짓는 일이다. 이미 최근 몇 년 동안 그 작업이 잘 진행됐고 양키스에서 그것이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잘한 결정이다. 돈도 자기 욕심도 따르지 않는 멋진 야구를 하고 싶다는 그의 갈망이 이번 결정에서 보인다. 그리고 2009년 가족이 함께 살았던 필라델피아에 가까운 뉴욕을 선택한 것도 현명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불혹에 가까워지면서 하는 행동이 더욱 마음에 든다. [ICCsports.com의 블로거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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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한화 이글스에서 뛰는 날이 곧 오길...

BK Column | 2010/02/13 11:15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박찬호와 같은 경험 많은 선수를 어떤 팀이 원하지 않을까
.

자유계약 선수 박찬호(1973 630일생)가 아직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사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새 둥지를 찾을 가능성은 99.9%에 가깝다. 메이저리그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박찬호와 같은 경험이 풍부하고 지난 시즌 잘 던진 선수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다만 로스터 정리가 아직 되지 않았기에 정리된 후에 그의 영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해서든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하겠지만 요즘 그가 한화 이글스와 훈련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한국에서 남은 현역 야구 선수 인생을 살면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메이저리그 구단이 그를 원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기 때문에 계약을 못하는 모양새다
. 이럴 때 한국 프로야구 진출을 전격적으로 결정한다면 한창 붐이 일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에 큰 도움이 되면서 박찬호 본인도 자랑스럽게 한국 야구에서 활약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팬들은 박찬호가 노모 히데오의 아시안 투수 최다승(123)을 넘어서 주기를(3승 남았음) 기대할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하길 원하는 팬들도 상당수다. 가장 좋은 모양새는 아시안 투수 최다승을 넘어서고 2010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피칭을 한 후에 2011년부터 한국에서 뛰는 것이지만 투수의 몸이 원하는대로 따라가주는 게 아니기에 그때 그때 결정은 중요하다.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았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부터 시작한다.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시나리오에서 제외됐음)

Chan Ho Park
Chan Ho Park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시나리오 1: 2010년에도 2009년처럼 맹활약을 펼친다. 노모 히데오의 123승을 넘어서서 아시아 투수로서 최다승 자리에 오르고 메이저리그 은퇴를 선언한다. 한국으로 금의환향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2011년부터 뛴다.

시나리오 2: 2010년과 2011년에 2009년처럼 좋은 활약을 펼친다. 2012년에 한국 프로야구에서 뛴다. 2012년에는 만으로 39. 한국 나이로 40세가 된다.

시나리오 3: 2010년 시즌부터 한국 프로야구에서 뛴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그를 원했지만 그는 당당히 한국 프로야구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한국행을 전격적으로 결정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완전붐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나리오 4: 2010년에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고 뛰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다. 노모 히데오의 기록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한국행 결정.  

시나리오 5: 2010년에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고 뛰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다. 노모 히데오의 기록도 넘어서지 못한다. 2011년에도 메이저리그 도전. 이렇게 되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이 점점 힘들어진다.

그가 어떤 결정을 하든 한국 팬들은 그를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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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님 2010/02/14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이저리그에 있으려는 경우는 좋지 못한 결과밖에 없네요...하여튼 오신다며 대 환영!! 미국에 계속 계신다고 하더라도 화이팅 입니다.

  2. 야구광 2010/02/14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가 많아서 메이저리그에 남는 기간이 길수록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되는 것 같아요. 유명 투수들도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결과를 냈지요....38세 투수이면 적지 않은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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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810.(한국 기준) 필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젊은 단장 마크 샤파이로와 전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Shapiro는 샤피로가 아니라 샤파이로로 발음한다고 한다. 당시 인터뷰를 통해 추신수(당시 24)와 인디언스 구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어
: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인터뷰이: 마크 샤파이로

인터뷰 일자: 2006 810

인터뷰 방법: 전화 인터뷰

 

Cleveland Indians vs. Mariners in Seattle.


마크 샤파이로 단장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추신수에 대한 칭찬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추신수는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 "스피드가 좋다." "어깨도 좋다." "무엇보다 공격력이 뛰어나다." "플레이트에서 인내심이 돋보인다." "지난 성적을 보면 꾸준히 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심히 플레이한다." "한 인간으로서도 믿을만한 사람이다." 

 (음성 인터뷰 플레이 버튼을 클릭해보세요)





마치 준비된 대사를 하는 배우처럼 칭찬 발언이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샤파이로 단장은 "오랫동안 추신수의 활약을 지켜봤다. 우리는 그가 빅리그에서도 통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벤 브로셔드(1루수)가 좋은 선수임에도 맞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추신수가 필요한 것은 기회(opportunity)였고 우리는 그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트레이드를 했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추신수가 시애틀에서 실력발휘를 못했던 것은 기회가 적어서였기 때문일까? 샤파이로는 "그렇다"고 답했다.

(음성 인터뷰 플레이 버튼을 클릭해보세요)

 

그는 "시애틀에는 이치로 이바녜즈와 같은 훌륭한 외야수가 있기 때문에 추신수에게 부족한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또 이른 시일 안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탓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음성 인터뷰 플레이 버튼을 클릭해보세요)

 

괜찮은 1루수를 보내고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되지 않은 추신수를 영입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그렇다면 추신수가 인디언스 구단에서 주요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샤파이로 단장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팀에는 현재 그레이디 사이즈모어 트래비스 해프너와 같은 좋은 선수들이 있는데 추신수도 그들과 함께 인디언스에 꼭 필요한 선수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음성 인터뷰 플레이 버튼을 클릭해보세요)

 

다음은 그 밖의 대화 내용.

 

-유명한 단장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런가?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다."

 

-추신수가 인디언스 유니폼을 입은 후에 한인 팬들 사이에 인디언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단 이 팀은 젊은 선수를 위주로 재건을 하고 있는가가 궁금하다.

 

"그렇지는 않다. 핵심적인 중견 선수들도 있고 젊은 선수들도 있다. 좋은 젊은 선수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시즌에는 기대만큼 성적이 나와주지 않았지만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추신수 / 국내야구선수
출생 1982년 7월 13일
신체 키181cm, 체중95kg
팬카페 Mariners★Superstarn.17추신수
상세보기
 

-추신수에 대한 당신은 생각은

 

"뛰어난 선수다. 그를 영입하기 전에 메이저리거로서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기타 칭찬 내용은 앞서 소개해 생략한다.) 

 

-추신수가 좋은 투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물론이다. 우리는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고 스카우팅 리포트도 계속 받았다."

 

-2002년에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추신수가 미래의 올스타이고 40홈런-40도루를 기록할 선수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추신수는 모든 분야에서 잘하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이다. 그러나 그런 큰 기대는 선수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가 올스타가 되기를 바라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월드시리즈 챔피언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원이 되는 일이다."

 

-인디언스에는 다른 한국 선수가 있다. 현재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뛰고 있는 최향남이다. 특히 한국에 있는 팬들은 그가 한국 프로야구 출신이라 그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최향남은 올해 메이저리거가 될 가능성이 있나?

 

"버펄로 바이슨스에서 뛰고 있는 최향남을 잘 알고 있다. 트리플A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가 빅리거가 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우리의 로스터(roster) 상황을 보면 그가 메이저리그로 오기 위해서는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최향남 / 국내야구선수
출생 1971년 3월 28일
신체 키187cm, 체중83kg
팬카페 아파치 투수! 최향남
상세보기
 

-인디언스에 한국 선수 2명이 있고 한국에는 스카우트가 있다. 한국 선수 스카우팅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는

 

"세계 야구에 관심이 있다. 특히 세계 야구의 흐름을 파악하고 한국 선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한국인 스카우트를 고용했다. 현재 활발히 한국 선수 스카우트를 하고 있다."

 

-시간을 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좋은 말을 많이 나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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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인터뷰] 서재응 마이너리거 시절

인터뷰 | 2010/02/03 16:49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2001년 6월24일 서재응은 마이너리그였습니다. 당시 서재응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인터뷰어: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인터뷰이: 서재응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New York Mets vs. Los Angeles Dodgers

수년 내에 메이저리거가 될 서재응(뉴욕 메츠 산하 더블A팀 투수) 은 필자와 인터뷰를 갖고 그동안의 생활을 소개했다. 다음은 마이너리그 최고의 유망주들만 참가하게 되는 '퓨처스 게임‘에 출전하게 될 서재응과의 일문일답 내용.


▷그동안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서재응(이하 서): 부상 당한 어깨를 꾸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긴팔을 입고 다니고 야구장에서도 뜨거운 물로 찜질을 합니다.


▷아파서 오랫동안 마운드에 서지 못했는데 도움을 가장 많은 줬던 분은.

▶서: 물론 형(서재환-메츠와 계약한 후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다가 귀향)이 많이 도움을 줬습니다. 부모님과 친구 이재준 군의 도움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생활에서 어려운 점은?

▶서: 영어가 역시 어려운 부분이고 식사 문제도 어려운 점입니다. 야구장안에서는 의사 소통이나 히어링이 문제가 없는데 사회로 나가면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미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힘들 때가 많습니다.


▷팀(빙햄튼 메츠)내에서 친한 선수는 누구인지

▶서: 포수 새미 로드리게스와 가장 친합니다. 항상 같이 다니고 그 친구가 저를 잘 챙겨 줍니다.


▷여가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는지

▶서: 여가 시간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경기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면 ESPN을 본 후 12시나 1시쯤에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서 경기장으로 가고 경기를 치르고 나면 귀가하기 때문에 남는 시간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구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에서 새롭게 배운 구질을 소개해주세요.

▶서: 체인지업과 투심을 배웠습니다. 현재 포심 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서클 체인지업 등으로 타자들과 상대합니다.


▷98년까지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94마일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올시즌에는 어떤지

▶서: 구속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87-88마일 정도가 스피드건에 찍힙니다. 가을이 되면 스피드는 좋아질 겁니다. 이제 부상에서 막 컴백해서 스피드가 안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컨트롤로 상대타자와 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수가 사인 주는 대로 던지는 편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좋아하는 투수가 있다면.

▶서: 랜디 존슨의 파워 피칭이 마음에 듭니다. 물론 컨트롤의 마술사 그렉 매덕스도 좋아합니다. 저도 존슨과 같은 파워 피처가 되고 싶습니다.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는데.

▶서: 물론 저도 초구 스트라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공격적인 피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는

▶서: 단기 목표는 올시즌 100이닝을 넘기는 것입니다. 아직 한 번도 100이닝을 넘기지 못했거든요. 또 잘 던져서 올 시즌 트리플A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장기 목표라고 하면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서 꾸준히 10승 이상을 올리는 투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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