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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엘튼 브랜드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10/01/11 12:18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MVP, MVP!"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LA 클리퍼스 경기를 보면서 이런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LA 레이커스와의 대결에서 코비 브라이언트와 같은 레이커스 선수에 대해 이런 외침이 있었지만 클리퍼스 선수가 이런 칭송을 듣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주인공은 전 클리퍼스 포워드 엘튼 브랜드. 브랜드는 지금은 필라델피아 76ers 소속이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듀크대 3학년이 되기 전에 프로 진출을 선언한 브랜드는 1999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됐다. 그를 지명한 팀은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후 재건을 노렸던 시카고 불스. 듀크대 동문의 엄청난 비난 속에 NBA에 진출한 브랜드는 첫 시즌에 20.1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한 후 스티브 프랜시스와 공동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브랜드는 다음 시즌에도 20.1득점, 10.1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거의 매경기 20점과 10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리그의 최약체팀에 속했기 때문에 그를 올스타로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2002년에 딱 한 번 올스타로 뽑혔지만 이것도 샤킬 오닐이 부상을 당해 대신 출전한 것이었다.

 브랜드는 불스에서 성공적인 2년을 마친 후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됐다. 브랜드는 클리퍼스 선수로는 대니 매닝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클리퍼스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 올스타 정도가 아니라 클리퍼스 팬들은 그를 격려하기 위해 "MVP, MVP!"를 외치곤 했다.

 개인 성적만으로 그는 충분히 MVP 후보에 오를만했지만 항상 팀 성적이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2005-06시즌에 브랜드는 24.7득점을 기록했고 클리퍼스는 플레이오프 6번 시드를 잡아 MVP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바로 그 시즌에 클리퍼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덴버 너기츠에 승리해 1976년 이후 첫 2라운드 진출의 감격을 누렸다. 1976년도 클리퍼스가 아닌 버팔로 브레이브스라는 이름으로 이룬 것이었다.  클리퍼스는 2라운드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피닉스 선스에 34패로 아깝게 무릎을 꿇었다. 브랜드는 그해 MVP로 선정되지 못했다.

 클리퍼스가 상승 무드를 타는 듯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 클리퍼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브랜드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 결장했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클리퍼스와의 계약은 만료되는 상황이었다. 브랜드가 옵션 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브랜드는 2008 79 76ers로 이적했다. 5년 계약이었다. 클리퍼스 팬들은 실망했다. 돈 욕심에 LA를 떠난다고 비난했다. 클리퍼스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다행이었을까. 브랜드는 2009 25일 어깨 수술을 받았다. 대형 계약을 맺은 후 그가 76ers에서 뛴 첫 시즌의 경기 수는 29경기에 불과했다.



다음 시즌인
2009-10시즌에 복귀한 브랜드는 31경기에 출전했지만 주전 출전은 18경기에 불과했다. 성적도 이전 같지 않았다. 평균 20득점을 꾸준히 올려줬던 그는 76ers에서 13득점을 올리는 선수가 됐다. 노화현상이었을까. 그는 NBA 역사상 개인 통산 평균 20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한 4명 중 한 명이었는데 그의 평균 득점은 19점대로 내려갔다. 평균 리바운드는 간신히 10점대를 유지했지만 이런 추세대로라면 9점대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브랜드는 클리퍼스 팬들의 비난을 받고 팀을 옮겼는데 대학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브랜드는 듀크대 2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입문했다.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대학을 일찍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는 듀크대 출신 농구 선수 중 처음으로 졸업장 없이 NBA로 간 선수로 기록됐다. 당시 브랜드가 전통을 깨자 제니퍼라는 듀크대 학생은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듀크는 명문대다. 그래서 모든 선수가 졸업장을 받고자 하는데 당신이 그 전통을 무너뜨렸다. 당신은 더 이상 듀크의 가족이 아니다." 이에 브랜드는 "당신의 부모가 이 학교에 당신을 보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잘 알고 있다. 당신과 같은(부자를 의미) 부류는 나와 같은(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과 듀크 동문이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두 사람의 의견 교환은 당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브랜드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듀크를 선택했던 것은 선수들의 졸업률이 높았기 때문인데 그런 그가 프로에 일찍 입문한 것은 의외였다. 브랜드는 그러나 듀크의 명예를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듀크대 출신 중 처음으로 NBA 드래프트에서 1번으로 지명된 선수로 기록된 바 있다.

시카고 불스에 지명된 브랜드는 2년 동안 좋은 성적을 냈지만 리그 최하위팀에서 뛰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브랜드는 두 시즌을 뛴 후 곧바로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됐는데 두 번째 팀 역시 서부에서 하위권 팀이었다.

 브랜드는 6피트8인치의 작은 파워포워드였기 때문에 그가 프로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그는 거의 매경기 10리바운드 이상을 잡아냈다. 10리바운드 중 공격 리바운드는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키가 작은 그가 공격 리바운드를 잘 잡아내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에 대해 "리바운드는 결단력에 의해 좌우된다. 물론 나의 긴 팔과 다른 선수에 비해 볼의 흐름을 잘 읽는 능력도 있을 것이다. 나는 특히 공격리바운드를 좋아한다. 공격 리바운드를 잡는다고 해서 바로 득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격 리바운드의 성공은 팀의 사기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브랜드는 화려한 듯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화려한 특이한 선수였다.

그 기능이 지금은 발휘되지 않고 있다. 30세의 나이 때문일까.



[브랜드 프로필]

포지션: 파워 포워드

생년월일: 1979 311

: 6피트8인치(2m3cm)

몸무게: 254파운드(115.2kg)

출신교: 듀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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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데릭 로즈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10/01/07 13:14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북미 프로농구(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되면 농구 팬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다. 역대 1번 지명 선수는 대부분 큰 관심을 받은 만큼 실력으로 뛰어남을 입증했다. 60,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스카 로벗슨(1960. 신시내티), 루 앨신더(1969. 밀워키. 이후 커림 압둘 자바로 개명), 덕 콜린스(1973. 필라델피아), 빌 월튼(1974, 포틀랜드), 어빈 "매직" 존(1979. LA 레이커스)이 전체 1번으로 지명돼 화려한 프로 인생을 시작했다.



80년대와 90년대에도 전체 1번으로 지명된 수퍼스타가 여러 명 탄생했다. 제임스 워디(1982. 레이커스), 데이비드 로빈슨(1984. 샌안토니오 스퍼스), 샤킬 오닐(1992, 올랜도 매직), 앨런 아이버슨(1996. 필라델피아 76ers), 팀 던컨(1997. 스퍼스)이 그들이다.

전체 1번 지명권으로 평범한 선수를 골라 망신을 당하는 구단도 있었다. 퍼비스 엘리슨(1989. 새크라멘토 킹스), 조 스미스(1995.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마이클 올로워캔디(1998. LA 클리퍼스), 콰미 브라운(2001. 워싱턴 위저즈) 등은 실패작이었다. 모험에 가까운 지명이었는데 결과는 매우 좋지 않았다.

Bulls vs. Pacers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번 지명권을 가진 시카고 불스가 지명한 선수는 멤피스대의 1학년생 포인트 가드 데릭 로즈였다. 불스의 존 팩슨 단장은 성품, 리더십, 팀 화합을 중시하는데 로즈가 불스를 위기에서 건져낼 구원 선수로 생각하고 있다.

로즈는 어떤 선수인가. 대학시절 NCAA 토너먼트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로즈는 키가 큰(6피트4인치) 포인트 가드로 운동 신경이 뛰어나다. 그는 드리블 능력은 물론, 리바운드, 블락샷, 덩크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정규 시즌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로즈는 NCAA 토너먼트에서 매 경기 트리플 더블에 가까운 성적을 올려 전체 1번 지명 선수가 됐다.

NCAA 토너먼트 4강전에서 UCLA는 로즈를 막지 못해 완패한 바 있다. 당시 존 캘리패리 멤피스대 감독은 "로즈는 원하면 평균 30득점을 기록할 수 있다. 그는 그러나 개인 득점 14점이면 팀 승리에 충분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팀 동료들과 함께 승리를 이끌기를 원하는 선수다"라고 칭찬했다.


Kansas v Memphis

전문가들은 로즈를 드웨인 웨이드(마이애미 히트) 또는 제이슨 키드(댈러스 매버릭스) 수준의 선수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로즈는 포인트 가드이지만 폭발력이 대단하다. 로즈의 슬램덩크는 드웨인 웨이드를 연상케 한다. 크로스 오버 드리블이 뛰어나고 움직임이 빨라 속도전을 중요시하는 불스 구단에 꼭 맞는 선수다.

로즈의 1번 지명은 옳았다는 평이 있었다. 로즈는 루키 시즌(2008-09시즌) 16.8득점, 6.3어시스트, 3.9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47.5%를 기록해 NBA 올해의 루키 선수가 됐다.  불스는 로즈의 맹활약 덕분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는데 1라운드 상대는 보스턴 셀틱스였다.

로즈는 생애 첫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36득점, 11어시스트를 기록해 스타 탄생을 알렸다. 플레이오프 데뷔전에서 최다 득점에 타이를 이룬 기록이었다. 불스는 선전했지만 셀틱스에 34패로 아깝게 패했다.

Hornets vs. Bulls

로즈는 2009-10시즌에도 첫 33경기에 18.6득점, 3.5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로즈에게는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일도 있었다. 2009NCAA 조사에 따르면 로즈의 고교 시절 SAT 성적(한국의 수능시험 성적)이 진짜가 아님을 찾아냈고 로즈와 그의 소속팀인 멤피스대의 2008년 모든 기록을 무효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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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틀랜드 블레이저스는 1970년 창단한 구단으로 오리건주의 유일한 메이저 프로 스포츠 구단이다. 오리건주에서 유일한 프로 구단이다 보니 1977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814경기 연속 티켓 매진을 기록하는 등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는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1977년은 블레이저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NBA 챔피언이 된 해이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블레이저스는 90년대 초반이 전성기였다. 당시 두 번이나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주인 폴 앨런이 구단주로 있는 이 팀의 단장은 케빈 프리처드이고 네잇 맥밀런이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블레이저스는 과거 하승진의 소속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승진은 지난 2004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6번으로 블레이저스에 지명됐지만 46경기만 뛰고 NBDL(하위리그)을 전전했고 이후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됐다. 벅스에서도 방출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블레이저스는 드래프트에서 불운한 편이었다. 특히 1984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마이클 조던을 뽑지 않고 샘 보위를 지명한 것은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었다. 그런 팀이 23년 후인 2007 1번 지명권으로 그렉 오든을 지명했는데 오든은 놀라운 성적을 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이 구단은 2007-08시즌을 우울하게 맞은 바 있다오든이 부상으로 뛰지 못하자 암울한 분위기였던 것블레이저스는 2007 1130일까지 암울한 분위기에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2007 12월부터 있었다. 이 팀은 2007 123일부터 30일까지 13연승을 내달렸던 것블레이저스는 이후 서부 컨퍼런스에서 중상위권의 팀이 됐다.

 
블레이저스의 상승과 뉴올리언스 호네츠의 급상승은 서부 컨퍼런스 전체 그림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 같았으면 승률 5할 안팎의 기록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6할 승률 안팎이 아니면 서부 컨퍼런스에서 포스트 시즌 진출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블레이저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가. 워싱턴대 출신의 슈팅 가드 브랜던 로이의 발돋움이 눈에 띄었다. 로이는 신인왕 출신으로 블레이저스의 얼굴마담 노릇을 했다로이는 득점력이 높으면서도 어시스트를 잘하는 선수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한 후 블레이저스로 트레이드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케빈 맥헤일 단장은 후회 막심할 것이다. 로이가 뛰어난 선수임은 모두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것으로 생각한 전문가들은 사실 없었다



 
보스턴 셀틱스의 닥 리버스 감독은 2007년 로이에 대해 "그는 MVP급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극찬했다. 리버스의 칭찬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로이는 슈팅 능력이 좋고, 공을 잘 다루고, 수비가 뛰어나다. 그는 상대팀의 최고 선수를 매일 밤 방어한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이에 로이는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은 소속팀 승리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쭐하지 않고 더 좋은 선수가 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게 로이의 반응이었다

 
블레이저스 팬들은 또한 포워드겸 센터인 라마커스 얼드릿지의 급성장에 놀랐다. 신인 시즌에 9득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던 얼드릿지는 두 번째 시즌에 A급 빅맨이 됐다. 얼드릿지는 로이와 함께 블레이저스의 '-투 펀치' 됐다.


 네잇 맥밀런 블레이저스 감독은 그러나 두 선수에 의존하는 경기를 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고른 기여를 강조했다. NBA 전문가들은 두 스타 선수를 중심으로 벤치 선수들의 기여도가 높은 블레이저스가 수년 내에 막강 전력을 자랑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오든이 완전한 몸 상태로 복귀한다면 블레이저스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구가했던 전성기를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블레이저스는 클라이드 드렉슬러, 테리 포터, 클리프 로빈슨, 저롬 커시, 케빈 덕워스, 벅 윌리엄스로 이뤄진 막강 화력의 군단이었다.

 1988
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 창업주였던 폴 앨런이 블레이저스 구단을 사들인 후 이 팀은 크게 달라졌다. 선수를 대폭 교체하고 릭 애들먼에 감독 자리를 맡기면서 포틀랜드는 완전히 다른 구단이 됐다. 이 구단은 1990년과 1992년에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며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는데 불행히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 때 결승에서 만나 챔피언이 되지는 못했다.




 
1994
년 밥 윗시트가 단장이 되면서 파워군단은 해체됐다. 윌리엄스, 포터, 로빈슨, 커시 등이 블레이저스를 떠났다. 1995년 가을 마침내 2만 명이 매경기 모여들었던 로즈 가든은 연속 매진 기록은 중단됐다.

 블레이저스의 재건 노력은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챔피언이 될 기회를 얻었다. 스카티 피핀, 라시드 월러스,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등을 영입한 이 구단은 90년대 후반 NBA의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번번이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미끄러졌다. 2000년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는 LA 레이커스에 거의 승리했다가 막판 극적인 역전골을 허용하면서 역전패했다. 당시 블레이저스는 리그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지만 불운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2001, 2002,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1라운드 탈락의 쓴잔을 마신 블레이저스는 2008년까지 플레이오프에도 못 나가는 팀으로 전락했다.

 39년 동안 블레이저스는 플레이오프에 27번 진출했고 1977년 딱 한 번 NBA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NBA 챔피언 결정전에는 2번 나갔고 시즌 최고 승률은 1991년에 기록했다 (6319). 1977년 챔피언십 당시 블레이저스에는 전설적인 지도자 잭 램지와 대학농구의 전설적인 선수 빌 월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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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불스는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인 유타 재즈를 만났다. 재즈와 2년 연속 챔피언 트로피를 놓고 펼치는 대결이었다. 불스는 1차전에서 일격을 당했다.

1998 63일 유타주 솔트레익시티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재즈의 존 스탁턴은 연장전 막판에 클러치 샷을 터뜨리는 등 연장전에서만 7득점을 올리며 맹활약, 소속팀에 88-85승리를 안겨줬다. 재즈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레이커스에 4전 전승을 거둔 상승세를 이어갔던 것이다.

재즈는 10일간 휴식을 취한 게 보약이었다. 불스의 조던은 33득점을 올렸지만 연장전에서 결정적인 턴오버를 범했고 중요한 드라이빙 샷을 놓쳤다. 특히 4쿼터 75-72 상황에서 스카티 피펜이 3점슛을 성공시켰을 때 조던은 자신에게 공을 패스하지 않았다고 피픈을 혼내는(?) 분위기를 연출해 팀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재즈의 '우편배달부' 칼 말론은 중거리슛 연속 10개를 미스하는 등 부진했으나 연장전에서 중요한 슛 2개를 연속 성공시키며 "역시 말론이다"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불스의 데니스 로드맨은 팀의 패배 가운데서도 빛나는 플레이를 여러 차례 했다. 그는 경기 전 엄지 손가락 부위에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고통을 참고 투혼을 발휘해 2쿼터에만 5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 다. 재즈는 벤치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기록상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주전급 선수들이 벤치에 쉴 때 오히려 점수차 를 벌리는 역할을 했다. 스탁턴의 백업 가드인 하워드 아이즐리는 1차전에서 8득점, 6어시스트, 2개의 스틸을 기록하는등 맹활약하며 코트를 종횡무진 누볐다.



삐걱댔던 무적함대 불스는 2차전에서 비웃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조던과 피펜은 불스의 4쿼터 점수 중 2 점을 제외하고 모두 넣어 2인 군단의 파워가 막강함을 보여줬다. 조던은 2차전에서 승리한 후 "사람들은 피펜과 내가 나이에 비해 너무 코트에 오랜시간 뛰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훌륭한 팀을 물리쳤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던은 이날 4쿼터 13득점을 포함 37득점을 기록했고 피펜은 21득점, 쿠코치는 13득점했다. 1차전과는 달리 2차전에서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던 조던은 "경기를 즐기기로 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그의 이러한 감정 변화가 팀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3차전은 불스의 완승이었다. NBA에 샷클락 (Shot Clock)이 도입된 이래 한 경기 최저 득점은 55점이었는데 재즈가 3차전에서 이 기록을 깼다. 54득점에 그쳤던 것. 불스가 96-54로 완승, 시리즈를 21패로 앞서 나갔다.

재즈는 이 경기에서 여러 기록을 경신했다. NBA챔피언 결정전 최다 점수차(42)로 패배, 최저 야투성공(21개만 성공), 후반전 최저득점(23) 기록을 세웠다.

"빌어먹을(Damn).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재즈의 그렉 포스터는 경기 후 실망스런 목소리로 말 했다.

불스는 4차전에서도 승리해 시리즈 마감을 눈앞에 두게 됐다. 4차전에서 86-82로 승리한 불스의 관심은 조던이 아닌 로드맨에 쏠렸다. 악동 로드맨은 4차전에 열리기 전 연습에 무단으로 불참하고 레슬링 경기를 관전하러 가 모든 이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로드맨은 우려와는 달리 이날 4쿼터 종료 3분여를 남기 고 중요한 자유투를 4개나 넣었다. 로드맨의 자유투 4구는 마이클 조던이 중요한 상황에서 4개 중 무려 3개를 미스한 것과 비교되면서 더욱 빛났다.

로드맨은 또한 재즈의 '우편배달부' 칼 말론의 공격을 4쿼터에 완벽히 차단했다. 

조던은 4차전에서 34 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그는 4 쿼터 후반부 박빙의 리드를 지킬 때 포스트업을 하며 쉽게 점수를 올려 재즈의 거센 추격에 쐐기를 박았 다. 피펜은 경기 초반 4개의 3점슛을 연속으로 성공시켰고 공격과 수비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4차전 28득점.

5차전에서는 재즈가 승리했다. 시리즈는 32패로 불스 리드. 6차전이 유타에서 열리기에 불스는 부담스러운 원정이었다. 불스는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단 한 번도 7차전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모두  6차전 또는 이전에 승부를 끝냈다.



6차전은 마이클 조던의 환상적인 슛으로 유명한 경기다. 경기 종료 5.2초를 남긴 상황에서 조던은 브라이언 러셀을 제치고 멋진 중거리슛을 성공시켰고 불스는 87-86으로 앞서 나갔다. 이 장면은 역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5.2초를 남긴 상황에서 재즈의 스탁턴이 슛을 시도했는데 공은 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불스의 승리였다. 지난 8년 동안 6차례 우승이었다. 이날 조던은 45득점을 기록했고 챔피언 결정전 MVP로 선정됐다.

조던은 경기 후 정말 긴 여정을 지나왔다. 우리는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팬들과 언론의 도움 그리고 신이 주신 능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승을 한 이틀 후 불스는 시카고 그랜트 파크(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후 당선 수락 연설을 했던 장소)에서 팬들과 축하 파티를 했다. 이 자리에서 조던은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는 시카고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필 잭슨 감독은 확고했다. 이것이 불스와의 마지막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조던이 은퇴를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조던은 잭슨이 없는 팀에서 뛰고 싶지 않다고 말해 은퇴를 기정사실화했다.

불스가 챔피언이 된 후 이 팀의 구단주인 제리 라인스도프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불스는 10일 이내에 새 감독을 결정할 것이며 이는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의 미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조던은 새 감독에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자신의 성격을 맞추기가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조던의 은퇴 결정은 그러나 NBA 직장폐쇄로 인해 조금 복잡하게 됐다. NBA는 그 직장폐쇄 상황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할 수 없었고 물론 불스는 선수와의 계약 등을 할 수 없었다

NBA 구단은 감독, 코치와는 계약을 할 수 있었기에 불스는 팀 플로이드 전 아이오와대 감독을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1998 722일 발표가 있었다. 플로이드의 영입으로 조던의 은퇴를 확실해졌다.  조던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플로이드가 불스에 오면 뛰고 싶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조던은 한 골프대회에 참가 중 기자 회견을 통해서 "난 플로이드를  모르고 플로이드 감독도 나를 모른다. 이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플레이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플로이드는 NBA코치 경력이 전무한 감독이었다. 이에 대해 조던의 에이전트였던 데이비드 포크는 신임감독 선정에 대해 "1년 전에 이미 결정난 것"이라고 말하고 "조던이 다음 시즌에 뛸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조던의 은퇴 결정은 NBA직장폐쇄가 마무리 지어지면 발표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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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시즌이 시작하기 전 시카고 불스에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 필 잭슨 감독과 불스 구단의 연봉 협상이 난항을 거듭했고 스카티 피펜도 이전 계약에 묶여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잭슨 감독은 공개적으로 이번이 마지막 시즌이라고 말했고 피펜은 발 수술을 받고 2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마이클 조던도 35세의 노장이 되기 직전이라 농구 전문가들은 이제 불스의 시대는 끝난 것 같다고 전망했다.

실제 시즌 뚜껑을 열어보니 불스는 2년 연속 챔피언이 됐던 그 팀이 아니었다.

“불스는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탄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선수들도 불스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워싱턴 위저즈의 스타 크리스 웨버는 바로 전 시즌에 플레이오프에서 불스에 3전전패를 당한 기억은 오래전의 일인 것처럼 말했다.

불스는 1997-98시즌 첫 8경기에서 44패를 기록했다. 불스답지 않은 성적이었고 불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피펜이 수술로 출전하지 못한 것이 불스 부진의 주요인이었지만 그래도 44패는 좀 심했다.  

피펜이 없으니 조던도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1997 1112일 위저즈와의 경기에서 조던은 28점을 올렸다. 득점 기록만 보면 문제가 없었다.그러나 조던은 28개의 야투 중 단 10개만을 성공시켰다. 초반에는 그런 성적이 이어졌다.

‘오리지널 조던’의 실력이 아니었다. 8경기에서 조던은 야투성공률 38%에 게임당 평균 24점을 넣어 생애 통산 평균 득점 32점에 무려 8점 차가 났다. 상대팀은 피펜이 없으니 조던을 이중, 삼중으로 방어하면 쉽게 수비를 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조던이 혼자 경기를 풀어나가야 했기 때문에 압박감이 심하다고 분석했다.

불스가 연패를 당하자 조던은 위저즈전이 끝난 후에 아예 인터뷰도 거절했다. 불스의 필 잭슨 감독은 “현재 조던의 손목과 손가락 상태가 좋지 않아 컨디션이 나쁠 뿐이고 불스의 패인은 다른 선수들의 부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드였던 스티브 커는 “현재 우리는 슈팅, 리바운드, 수비등 모든 분야에서 형편없다. 조던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마라”고 강조했다.

어떤 이들은 불스의 부진을 데니스 로드맨의 무성의한 플레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로드맨은 코트 안팎에서 각종 문제를 만들어 냈다.

불스가 계속 부진하자 CNN의 한 기자는 조던과의 인터뷰에서 34세의 나이 때문에 부진한 것 아니냐고 질문을 했다. 조던은 상당히 불쾌해했다. 조던은 이 질문에 “어느 시즌보다 몸 상태가 좋다”고 답했다.



조던은 이후 조금씩 살아났다. 1997 129일 그는 뉴욕 닉스 전에서 29득점을 기록, 생애 통산 27,432점으로 역대 득점 3위였던 모지스 말론을 4위로 밀어냈다. 그는 카림 압둘 자바(38,387)와 윌트 체임벌린(31,419)에 이어 역대 득점 순위 3위에 올랐다. 센터를 제외한 선수 중에서는 역대 1위였다.

불스는 12월에 5연속 승리를 거두는 등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까지 불스는 179패가 됐다. 조던은 이후 올스타전에서 MVP로 선정돼 개인 통산 3번째 올스타 MVP 트로피를 받았다. 1998 327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불스 대 애틀랜타 혹스전에 무려 62,046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이 경기는 풋볼경기장인 조지아돔에서 열렸다. NBA 역사상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다.

시즌 초반 누구나 이길 수 있는 팀처럼 보였던 불스는 조던의 맹활약 덕에 시즌을 6220패로 마쳤다. 조던은 82경기 전 경기에 출전했다.

1998년 플레이오프가 시작했다. 불스는 역대 6번째 우승과 함께 3년 연속 우승을 노렸다. 모두 조던 시대에 이뤄낸 업적이었다. 플레이오프 첫 상대는 뉴저지 네츠. 불스는 가볍게 3전전승을 거두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다음 상대는 샬럿 호네츠였고 역시 조던의 불스는 41패로 쉽게 승리했다.



다음 상대는 만만치 않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였다. NBA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만난 페이서스는 래리 버드가 감독으로 있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상승무드를 탔다. 1차전은 조던 쇼로 펼쳐졌다.

1998 517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1차전에서 불스는 전반전 열세를 단단한 수비로 만회하며 8579로 신승했다. 이 경기 승리의 견인차는 후반전에 소나기 슛을 퍼부은 조던이었지만 숨은 공로자는 피펜이었다. 피펜은 페이서스의 포인트 가드인 마크 잭슨을 철저하게 봉쇄하며 팀 수비를 리드, 페이서스가 26개의 턴오버를 범하도록 유도했다. 피펜은 비록 공격에서 9개의 슛중 1개만을 성공시키는 부진을 보였고 토니 쿠코치가 11개의 슛시도중 2개만을 바스켓에 넣었지만 철벽 수비가 모든 것을 만회했다. 불스는 이날 조던마저 초반 9개의 야투 중 1개만을 성공 시키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지만 그는 마지막 24분을 남겨 놓고 신들린듯한 막판 슛을 쏘아대며 31득점을 올렸다.

조던은 1차전 승리를 거두는 날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불스 팬들은 경기도중 "M-V-P"를 외쳐대며 조던의 수상을 축하했다.

불스는 2차전에서도 승리했다. 예상과는 달리 시리즈가 싱겁게 끝날 것처럼 보였다. 2차전에서 조던은 41득점을 올리는 맹활약으로 소속팀의 10498 승리를 견인했다. 페이드어웨이 슛, 골밑 돌파, 덩크, 리바운드, 수비등 농구의 황제답게 코트를 누빈 조던은 특히 4쿼터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날 홈팬들 앞에서 MVP트로피를 받은 조던은 41득점으로 생애 통산 35번째 플레이오프 40+ 득점 경기를 기록했다.

1차전에서 특이한 수비작전으로 성공했던 불스는 2차전에서도 같은 작전을 사용했다. 피펜을 페이서스의 게임플레이어 마크 잭슨 전담 마크맨으로 붙였고 론 하퍼로 하여금 레지 밀러를 밀착 방어하게 했다. 역시 성공이었다.



하지만 3차전부터 페이서스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했다. 3차전의 승리는 페이서스의 몫이었다. 3차전 3분여 남은 상황에서 페이서스는 92-89로 리드했는데 절뚝거리는 발을 이끌고 코트에서 투혼을 발휘한 레지 밀러가 3점슛을 성공 시켰고 이후 그는 중거리슛을 하나 추가해 불스의 추격을 따돌렸다.

불스는 경기 종료 30여초를 남기고 조던의 자유투와 피펜의 3점슛으로 순식간에 101-99로 추격했고 23초를 남긴 상황에서 조던이 3점슛을 성공시켜. 103-102 1점차로 따라붙었지만 농구 황제가 막판에 얻는 자유투 3구 중 한 개를 놓쳐 결국107-105로 석패했다.

4차전에서는 페이서스의 장신 센터 릭 스미츠(2m11cm)의 맹활약에 힘입어 다시 페이서스가 승리해 시리즈는 22패 원점이 됐다. 5차전에서는 다시 불스가 승리해 달아났지만 페이서스는 이전의 불스 상대와 달랐다. 6차전에서 페이서스는 멋진 승리를 거뒀다. 불스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패배였다.

물론 '억울함은 시카고 팬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6차전에서 경기 종료 2초를 남겼을 때 조던이 페이서스 수비수의 발에 걸려 넘어져 골밑 돌파에 실패했지만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았다. TV 슬로모션을 통해 본 결과 조던은 발에 분명히 걸려 넘어졌다.

조던은 경기후 "심판이 휘슬을 불어 줬어야 하지만 판정에 불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7차전에서 승리 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황제답게 말했다.

경기 종료 5초전. 91-89로 페이서스가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스는 마지막 공격을 했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조던이 마지막 슛을 책임지는 순간이 왔다. 조던은 공을 드리블하며 골밑을 향해 질주했다. 그런데 공을 놓치고 말았다. 상대편 수비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던 것. 페이서스는 떨어진 공을 낚아채 공격으로 연결시켰고 자유투를 얻어 1점을 보태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6차전에서 페이서스는 간판 스타 레지 밀러가 극도로 부진했지만 트래비스 베스트 , 릭 스미츠, 데일 데이비스의 맹활약이 돋보였다. 특히 조던의 밀착 방어를 받았던 베스트는 중요한 순간마다 중요한 슛을 성공 시켜 팀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베스트는 경기종료 33초를 남긴 87-87 상황에서 불스의 스티브 커 머리 위로 뱅크샷을 성공시켰고 8초 남은 상황에서 파울 샷을 유도해 2구를 모두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불스는 실로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최종 7차전을 치르게 됐다.


최종
7차전은 시카고에서 열렸다. 불스는 경기 초반 13점 차로 뒤져 3년 연속 우승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날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특히 불스가 큰 점수차로 뒤질 때 와 막판 몇 분 남겨두지 않은 채 역 전을 허용했을 때는 '무적함대'가 무너진다는 기대감 및 허탈감이 교차됐다.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둔 상황에서 인디애나는 위기를 넘기는 능력이 불스보다 부족했다.

불스 왕국의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운이 맴돌았다. 초반 13점차로 뒤질 때 그랬고 경기종료 5분을 남긴 상황에서 79 -79 동점이 됐을 때 마찬가지였다. 조던이 이끈 불스는 그러나 5차례의 챔피언 타이틀 획득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79-79 상황에서 피펜은 점프슛을 성공시켰고 이어 조던은 두 명의 더블팀을 유인한 후 룩 롱리에 노마 크 찬스 패스를 하면서 추가 득점을 도왔다. 페이서스는 안토니오 데이비스의 득점으로 85-83으로 추격했지만 곧 이어진 피펜의 러닝 훅 샷이 네 트에 꽂아지면서 다시 4점차로 벌어졌다.

이어진 페이서스의 공격에서 페이서스의 포인트가드 마크 잭슨은 공을 어이 없게 엉뚱한 곳으로 패스해 결정적인 턴오버를 했다. 불스는 그러나 2번 연속 슛을 미스하고 페이서스에 또 한번의 기회를 허용했다. 페이서스는 데릭 매키가 오픈 샷을 던졌지만 무위로 돌아갔고 조던이 리바운드를 잡았다. 불스는 계속된 공격에서 론 하퍼가 파울을 얻어 자유투 1구를 성공시키며 8초를 남긴 상황에서 5점차로 벌렸다.

조던은 경기 중 슛난사를 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슈팅 난조를 보였으나 여전히 28득점으로 팀내 최다득점을 했고 리바운드도 9개나 잡아냈다. 특히 자기가 던진 공이 미스되면 다시 리바운드를 잡 아 공격에 연결 시킬 때가 많았다.





페이서스는 레지 밀러가
22득점을 올리고 경기 중반까지 3점슛을 연속 성공시키며 '밀러 타임'을 예 고했으나 4쿼터에는 그 모습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조던이 밀러를 압박수비했기 때문이다. 88-83으로 승리한 불스가 3년 연속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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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 2009/12/09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7-98컨퍼런스파이널은 불스의 정신력과 노련미를 느낄수 있던 시리즈였죠..~
    이번에도 멋진 포스팅을 보게되어 기쁩니다 -!!

    • 밝은터 2009/12/09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행인님의 덕담 덕분에 잘 마무리가 지어집니다. 마이클 조던에 대한 몇 개 글이 더 남았는데 2009년에는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