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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통산 타율 0.366의 타이 콥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09/11/13 20:02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Ty Cobb
Ty Cobb by farlane 저작자 표시비영리

 
104 전인 1905 830 타이 (Ty Cobb)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타석에서 그는 41승을 기록했던 투수와 상대해 2루타를 날렸다. 상대팀은 뉴욕 하일랜더(양키스 전신)였고 투수는 1904시즌에 41승을 올렸던 체스브로였다.


통산 타율 366

 1905년부터 1928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타이 콥의 통산 타율은 366리였다. 로저스 혼스비가 비슷한 시기에 타이 콥의 기록에 도전했지만 359리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쳤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말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통산 평균 타율 3 이상을 기록하는 자체가 힘든 일이다. 3 타석 이상을 기록했던 선수 타이 콥에 가장 근접했던 현대 야구 타자는 토니 그윈으로 그는 82년부터 2001년까지 338리를 기록했다. 타이 콥은 지금은 불가능한 시즌 타율로 여겨지는 4 이상을 3번이나 기록했다. 38 이상을 기록한 시즌도 아홉 시즌이나 됐다.

 그의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 3035경기 출전, 4189안타, 홈런 117, 1937타점, 도루 892, 출루율 433, OPS 0.945.

 기타 경력을 보면 1911 아메리칸리그 MVP, 타격왕 12, 월드시리즈 출전 3, 트리플 크라운 달성 1(1909) 등이 눈에 띈다. 역대 최고 기록 보유 부문에서는 통산 타율(367), 최다 타격왕(12), 최다 3 시즌(23), 최다 홈스틸(50) 등에서 1위에 올라 있다. 최다 안타와 최다 도루 부문에서도 1위였지만 이는 피트 로즈와 리키 헨더슨에 의해 무너졌다.

독특한 성품

 그는 성격이 독특했다. 나쁘게 말하면 괴팍했고 좋게 말하면 개성이 넘친 선수였다. 그의 독특함은 은퇴 후에도 유지됐다. 타이 콥은 은퇴 30년이 지난 1958년의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지금 뛴다면 타율이 어느 정도일까?"라는 질문에 "31 정도"라고 답했다. 그의 부연 설명은 걸작이었다. " 나이 72세이니 정도밖에 기록할 없겠지"

 그의 독특한 행동은 계속 이어졌다. 올드 스타 자선 야구 행사에 출전한 그는 포수에게 "나이가 들어 방망이를 놓칠지 모르니 뒤로 앉아 있어라" 말한 기습 번트를 대고 1루에 진루한 적도 있었다. 같은 행동은 현역 시절에도 자주 목격됐다. 그는 주루 플레이를 항상 스파이크가 선명하게 보이게 하면서 상대 수비수를 차는 자세로 질주했다.

과장을 보태 박찬호가 과거 옆차기를 했을 당시와 비슷한 자세로 2, 3루와 홈으로 질주했던 것이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야구 전문 작가들은 타이 콥이 수비수에 위협을 주기 위해 스파이크 날을 매일 갈았다는 엽기적인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콥은 지나친 승부욕과 잔인함 등으로 인해 '그라운드의 외로운 늑대' '방망이를 난봉꾼'으로 불렸다. 그는 '더러운 선수' '인종차별주의자', '폭력적인 사람'으로 통했다. 그는 상대팀 선수뿐만 아니라 동료 심지어 팬과도 싸움을 했다.

Ty & Shoeless Joe
Ty & Shoeless Joe by farlane 저작자 표시비영리
타이 콥과 조 잭슨

그라운드의 엽기맨

 그의 엽기적인 행동을 모으면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고 한다. 타이 콥은 안타를 많이 때려내기 위해 방망이를 사이를 벌려 놓는 '스플릿 핸드 그립' 적용했는데 이는 확실히 효과를 봤다. 그런데 1925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보도되고 기자가 그에게 "루스의 파워는 정말 대단하다" 칭찬하자 승부욕이 발동한 그는 경기에서 홈런 3, 다음 경기에서 2개를 폭발시켰다. 홈런을 못치는 것이 아니라 안치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홈런 12개가 콥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었기 때문에 그는 확실히 홈런 타자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홈런 타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콥은 원래 오른손 타자였으나 1루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왼손 타자로 전향하기도 했다. 우투/좌타의 선수가 것이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의 야구 인생은 시작부터가 특이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17세가 되자 갑자기 야구를 하기 위해 타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그의 부친(윌리엄 ) 강력히 반대했지만 고집불통의 타이 콥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15달러짜리 수표 6장을 써주며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 말로 자식을 떠나보냈다.

콥은 어거스타 투어리스트라는 팀에 입단, 월급 90달러를 받는 선수가 됐다. 팀에서 맹활약한 콥은 이듬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500달러의 이적료로 권리가 이양됐다. 18세에 메이저리거가 됐던 것이다. 41세에 은퇴했으니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은 어느 누구도 욕할 없다
 

Sisler, Ruth & Cobb
Sisler, Ruth & Cobb by farlane 저작자 표시비영리
시슬러, 베이브 루스, 타이 콥

나쁜 사람 vs 좋은 사람

 타이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줄리 리즈웨이는 "그는 열정적이고 승부욕이 강했던 것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설명했다. 그는 "타이 헬스케어 시스템, 타이 교육 재단 등이 탄생한 것을 보면 있다" "실제 타이 콥은 병원 건립을 위해 1949 10 달러를 내놓았다" 덧붙였다. 10만 달러는 당시로는 엄청난 액수였다. 타이거스 경기 중계 위원이었던 어니 하웰은 "1940년대에 방송인으로서 새내기였을 많은 사람이 '타이 콥은 경험 없는 언론인과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말했지만 그는 친절하게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비열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타이 콥이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힌 것은 그의 자서전을 대필한 스텀프가 콥의 사후에 발간한 때문이다. 콥이 죽기 10개월의 생활을 상세히 소개했던 스텀프는 부정적인 내용만을 다뤘다. 이에 대해 타이 박물관 측은 " 선고를 받은 사람의 마지막 10개월은 아름다울 없다. 그것이 마치 타이 인생의 전부인 글을 쓰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타이 박물관: www.tycobbmuseum.org
 


타이 프로필

이름: 타이러스 레이몬드

생년월일: 1886 1218

출생지: 조지아주 내로우스

사망일: 1961 717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1905 830

포지션: 중견수

명예의 전당: 98.23% 득표율로 헌액(1936)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905-1926), 필라델피아 A's (1927-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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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인터뷰] 최초의 포수 빅리거 노렸던 권윤민

인터뷰 | 2009/11/11 19:53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2001년 시카고 컵스 산하에는 최희섭 외에도 권윤민이라는 미래의 스타가 있었다. 포지션은 포수였고, 말을 참 맛깔라게 했던 선수였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권윤민
인터뷰 일자: 2001년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최희섭 선수와 함께 미국 땅을 밟았을때까지만 해도 권윤민 선수(당시 23세)는 최 선수 못지 않는 강타자로 주목 받던 선수였다. 지난 시즌(2000년) 싱글A팀인 유진 에머럴드에서 초반 5할 대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던 권 선수는 한국에 있는 부친이 투병을 하게 되자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페이스를 잃기 시작했고 결국 고타율도 금세 추락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권윤민이 올시즌 부활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인하대 재학시절 14회 대륙간컵 야구대회 쿠바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에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 스타로 급부상 했던 권 선수는 아마추어 선수였을 당시부터 배팅 파워는 남부럽지 않은 선수였다.

권 선수의 한 측근은 "컵스와 계약을 했을 당시에는 최희섭과 타구의 비거리가 비슷했다"고 설명할 정도. 세계 최고의 야구 전문 통계사인 스태츠의 경우 '마이너리그 스카우팅 노트북 2001'에서 권 선수를 '올해 알아둬야 할 선수'로 꼽아 그 가능성을 인정한 바 있다.


▶올시즌 초반 2할2푼대의 타율로 약간 부진한 것 같은데요.

▷권윤민(이하 권): 별 걱정하지 않습니다. 방망이에 잘 맞고 있는데 운이 안따라 상대팀 수비에 잡힌 것이 많았습니다. 아직 미국에 온지 열흘밖에 되지 않아 성적은 큰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온지 열흘밖에 안됐나요?

▷권: 아.네. 아버님이 위암 말기이시기 때문에 한국에 다녀 왔습니다.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미국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권: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권 선수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선수였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권: 미국에서 건강 지키기가 더 쉽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동료나 친구들 만나면 술 한잔 해야 하고 하기 때문에 몸관리가 쉽지 않았죠. 이곳에서는 푹 잘 수 있고 휴식시간이 많아 건강 지키기가 쉽습니다. 동료들도 술을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에 건전하게 놀수 있고 이는 건강과도 직결됩니다.


▶팀 동료가 잘 해주나요?

▷권: 네. 유진에 있을 때부터 함께 뛰던 선수들이 지금 팀(랜싱 럭너츠)에서 같이 플레이를 하는데요, 6-7명 정도가 잘 해줍니다. 어디 놀러가고 그럴 때 항상 저를 데려가주고 또 제가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사주기도 하지요.


▶영어에는 불편이 없나요?

▷권: 지난해엔 영어 선생님이 교습을 해줬는데 올핸 교습이 없습니다. 지금은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지요. 알아듣는 것은 거의 알아듣고 말도 바디 랭기지와 아는 단어 모두 동원해서 하니 의사 소통에 큰 불편은 없습니다.


▶포수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투수와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할텐데. 투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마운드로 달려가서 뭐라고 대화를 나누나요.

▷권: 한국이건 미국이건 포수가 투수 마운드로 가서 하는 말은 농담입니다.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죠. 저도 동료들에게 농담을 건넵니다. 영어 잘 못하는 제가 마운드에서 열심히 말을 하면 그 자체가 재밌나 봅니다. 그래서 투수들이 긴장을 풀게 된다고 합니다.




▶최근들어 아시안 타자들이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권: 솔직히 저도 동양인 타자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타자는 어림없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미국에 와 보니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희섭 선수나 일본 타자들이 잘해낼 때 마다 저도 자신감이 붙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동양인 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는데 컵스의 스카우트가 했던 말을 대신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양인 포수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이 들면 왜 권윤민을 스카웃하겠는가. 그것도 거액을 들여가면서....’


▶최희섭 선수의 경우 홈런왕을 꿈꾸고 있던데 권윤민 선수는 어떤 목표가 있습니까.

▷권: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포수가 되는 것입니다. 즉, 수비가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엔 전문 포수가 없어서 제대로 포수 수업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프로선수들을 흉내내는 정도였고 대학교 때는 선배형들이 가르쳐준 것 정도가 배움이 전부였지요. 미국에 와서는 유진에 있을 때 감독님이 포수 출신이라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타격 보다는 수비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지난해 컵스 마이너리그 포수중 도루 저지율 1위가 바로 저였습니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는 무엇인가요.

▶권윤민(이하 권): 최종목표는 물론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입니다. 수비가 좋다는 칭찬을 듣는 포수가 되고 싶습니다. 단기 목표는 한 게임, 한 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죠.


▷미국에서의 선수 생활에 어려운 점은 없나요.

▶권: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코치, 감독님들이 정말 잘해주세요. 한국 선수들은 트레이너가 시키는 것 다하고 자기 몫을 잘 해내니까 좋아하시죠. 미국인들이 자유분방한 것 같아도 성실하고 자신들을 잘 따라주는 사람을 좋아해 줍니다.


▷미국에서 배운 새로운 타법이 있다면

▶권: 한국에서는 투수들의 공이 90마일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선 마이너리그에서도 95마일, 96마일을 던지니까 처음에는 정말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코치님들이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빠른 공을 못 치니까 중심을 뒤에 두고 공을 치라고 지도해주셔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코치께서 한국 선수들은 스윙 궤도가 좋다고 칭찬을 해주시더라구요.


▷미국에 온 한국 출신 선수들과 만남의 기회는 있나요.

▶권: 병현이(김병현 선수)와는 국가 대표에서 2년 동안 함께 생활해 친한 편입니다. 박찬호 형 빼고는 모두 만나 봤습니다. 조진호, 최희섭, 백차승, 추신수 선수 등과 형님, 동생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병현 선수와 대화할 때는 제가 주로 듣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김병현 선수는 미국에 저 보다 먼저 온 선배이고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생활하니까 빅리그 생활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줍니다.


▷만약 야구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권: 평범한 사람이 됐을 겁니다. 대학 다니고 졸업해서 취업 문제로 고민하고 그랬지 않았을까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권: 텍사스 레인저스의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입니다. 제가 포수니까 메이저리그 게임을 보면 포수의 움직임을 주로 보는데 로드리게스 선수는 동작이나 기본자세가 너무 잘 되어 있어 본받으려고 합니다. 물론 방망이도 좋구요. 굳이 마이크 피아자 선수와 비교한다면 피아자는 수비에 신경을 안쓰는 포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마크 맥과이어의 이야기를 들은 후 그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언젠가 그는 “계약할 때 몇 백만 달러 더 받아 봤자 그 돈 죽을 때까지 다 못쓴다. 차라리 내게 줄 돈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떼우는 선수들을 위해 써달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아, 그리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코치로 활동중이신 이만수 코치님을 꼭 뵙고 싶습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

▶권: 메이저리그 진입 때까지는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만약 메이저리그에 못 간다면 은퇴한 후 결혼 할 생각입니다.


▷굉장히 달변가인데 은퇴 후 야구 해설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권: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말 잘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글쎄요, 제 꿈은 포수 전문 코치가 되는 것인데 기회만 주어진다면 야구 해설도 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시카고 팬들께 인사말을 해주세요.

▶권: 안녕하세요. 처음에 제가 컵스와 계약했을 때 시카고 교민들께서 왜 그 포수는 시카고로 오지 않냐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시카고에 있는 친구를 통해 들었습니다. 지금은 준비 기간입니다. 시카고에 가게 되면 한국 야구 선수의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에 쓰는 후기

1999년 11월 잠재력을 평가받아 시카고 컵스와 120만 달러에 계약한 권윤민은 2003년 오른쪽 어깨 인대 부상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그는 이후 MBC ESPN 해설자로 활동하다가 2007년 한국 프로야구 신인 지명에서 2차 5순위로 KIA 타이거즈의 지명됐다. 2008년까지 기아에서 뛰었고 2009년부터는 기아 타이거즈의 스카우트로 일을 하고 있다.

권윤민 프로필
직업 : 야구코치, 전 야구선수
출생일 : 1979년 1월 22일
소속 : 기아 타이거즈 스카우트
학력 : 동산고등학교, 인하대학교
기아 타이거즈 스카우트 (2009년)


권윤민 미국 프로야구에서 성적

Batting Statistics
Year Team Lg Age Org. Level Pos Ln G AB R H 2B 3B HR RBI SB CS BB SO HBP IBB SH  SF DP  AVG OBP SLG OPS
2000 Eugene Nwst 21 CHC A- c   44 145 15 37 9 1 5 18 5 3 22 29 5 0 0 0 .255 .372 .434 806
2001 Lansing Midw 22 CHC A c   88 326 33 88 15 1 6 51 0 0 15 44 5 0 1 9 10  .270 .304 .377 681
2002 Daytona FSL 23 CHC A+ c   88 300 32 66 11 0 5 36 1 4 23 34 6 1 3 3 10  .220 .286 .307 593
2004 Boise Nwst 25 CHC A-     4 10 3 0 0 0 0 2 0 0 3 1 1 0 0 2 .000 .250 .000 250
  Daytona FSL 25 CHC A+ c-p   12 23 2 4 1 0 0 1 1 0 1 5 0 0 0 0 .174 .208 .217 425
  West Tennessee Sou 25 CHC AA     5 6 1 1 0 1 0 0 0 0 0 1 0 0 0 0 .167 .167 .500 667
Minor League Totals - 4 Season(s) 241 810 86 196 36 3 16 108 7 7 64 114 17 1 4 14 26  .242 .306 .353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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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 '발차기 사건' 팀 벨처 추신수의 코치

Just a Note | 2009/11/06 17:59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팀 벨처(48)와 투수 코치 계약을 맺었다.

벨처는 박찬호 '발차기 사건'에 연루된 전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 투수 출신. 당시 발차기 사건은 다음과 같이 발생했다.

박찬호가 1루로 달려갈 때 그를 강하게 태그했던 벨처는 곧이어 박찬호의 옆차기를 맞아야 했지만 다행히 정통으로 맞지 않아 큰 부상은 없었다. 당시 한국 팬들은 제대로 가격했어야 한다며 오히려 박찬호를 두둔하는 분위기였다.

그 벨처가 추신수 소속팀의 코치가 된다. 묘한 인연이다.

벨치는 지난 8년 동안 인디언스 구단의 특별 보좌역을 담당했다. 이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지도하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타구단 선수들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해 인디언스 코칭스태프에 제공하는 일도 맡았다.

오하이오 스파르타 출신의 벨처는 메이저리그 통산 146승140패를 기록했고 평균 자책점은 4.16이었다. 그는 1987년부터 2000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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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2010년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면 어떨까?

BK Column | 2009/11/06 13:32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Mets vs. Phillies

가족이 문제가 된다면 박찬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하면 어떨까.

코리안 특급박찬호는 2009 뜻깊은 한해를 보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것처럼 박찬호는 한국 팬들이 보낸 많은 용기와 마음의 힘으로 훌륭한 시즌 보낼 있었다. 사실 미국 팬들 사이에 박찬호의 존재감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나이가 많고 중간계투 요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찬호 개인의 사정과 목표가 있을테니 이런 글이 그에게 방해가 있지만 야구인 박찬호를 생각하고 한국 야구를 생각할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 것이라고 본다.

미국팬들의 반응과 관계 없이 박찬호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여러 차례 등판 경험을 했던 그다. 이는 선발 투수로 나와 시즌 15승을 것보다 값진 경험일 것이다. 얼마나 던졌는가. 기록상으로는 빼어난 피칭은 아니었지만 피칭 내용을 보면 아주 훌륭했다.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 짓고 한국 프로야구로 이동해서 은퇴를 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을 해본다. 한국 프로야구는 2009 중흥기를 맞았다. 최고의 해였다. 박찬호까지 합세한다면 야구 팬들에게는 최고의 서비스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 팬들은 박찬호가 노모 히데오의 123 기록을 넘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박찬호는 2009년까지 120승을 기록했다. 기록도 아깝긴 하다. 하지만 이동을 위해 지금이 최적기인 것은 사실이다. 2010 이후에 한국에 진출하면 조금 늦은 감이 있다. 그때 박찬호는 39세가 된다.

박찬호도 오래전부터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고 싶다는 발언을 있다. 중요한 것은 시기인데 야구 선수로서는 지금이 가장 좋다고 있다. 한국 야구 수준이 높아졌고, 관중도 모여들고, 조금씩 선진 야구의 틀을 갖춰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등장한다면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다는 것처럼 된다.

그리고 갈 데가 없어서 한국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여러 팀에서 그를 원하지만 한국 프로야구를 선택하는 모양새도 한국팬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기에 가족을 고려한 결정을 해야 한다. 팬들이 123승을 강력히 원한다면 뜻을 따라야 수도 있다.

이런 저런 상황을 빼고 박찬호와 한국 프로야구의 상황, 그리고 미국에서의 입지를 생각할 2010년이 한국프로야구 입문의  적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결정을 해도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랫동안 야구 팬들을 즐겁게 해준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밝은터]

 


박찬호 미국 프로야구 통산 성적

Pitching Statistics
Year Team Lg Age Org Lvl W L ERA G GS CG SH GF SV IP H R ER HR BB SO WP H9 HR9 BB9 K9 WHIP
1994 San Antonio Tex 21 LAD AA 5 7 3.55 20 20 0 0 0 0 101.1 91 52 40 4 57 100 7 8.1 0.4 5.1 8.9 1.46
  LA Dodgers NL 21 LAD MLB 0 0 11.25 2 0 0 0 1 0 4.0 5 5 5 1 5 6 0 11.3 2.3 11.3 13.5 2.50
1995 Albuquerque PCL 22 LAD AAA 6 7 4.91 23 22 0 0 0 0 110.0 93 64 60 10 76 101 8 7.6 0.8 6.2 8.3 1.54
  LA Dodgers NL 22 LAD MLB 0 0 4.50 2 1 0 0 0 0 4.0 2 2 2 1 2 7 0 4.5 2.3 4.5 15.8 1.00
1996 LA Dodgers NL 23 LAD MLB 5 5 3.64 48 10 0 0 7 0 108.2 82 48 44 7 71 119 4 6.8 0.6 5.9 9.9 1.41
1997 LA Dodgers NL 24 LAD MLB 14 8 3.38 32 29 2 0 1 0 192.0 149 80 72 24 70 166 4 7.0 1.1 3.3 7.8 1.14
1998 LA Dodgers NL 25 LAD MLB 15 9 3.71 34 34 2 0 0 0 220.2 199 101 91 16 97 191 6 8.1 0.7 4.0 7.8 1.34
1999 LA Dodgers NL 26 LAD MLB 13 11 5.23 33 33 0 0 0 0 194.1 208 120 113 31 100 174 11 9.6 1.4 4.6 8.1 1.58
2000 LA Dodgers NL 27 LAD MLB 18 10 3.27 34 34 3 1 0 0 226.0 173 92 82 21 124 217 13 6.9 0.8 4.9 8.6 1.31
2001 LA Dodgers NL 28 LAD MLB 15 11 3.50 36 35 2 1 0 0 234.0 183 98 91 23 91 218 3 7.0 0.9 3.5 8.4 1.17
2002 Oklahoma PCL 29 TEX AAA 0 1 27.00 1 1 0 0 0 0 3.0 9 9 9 0 3 3 1 27.0 0.0 9.0 9.0 4.00
  Texas AL 29 TEX MLB 9 8 5.75 25 25 0 0 0 0 145.2 154 95 93 20 78 121 9 9.5 1.2 4.8 7.5 1.59
2003 Texas AL 30 TEX MLB 1 3 7.59 7 7 0 0 0 0 29.2 34 26 25 5 25 16 1 10.3 1.5 7.6 4.9 1.99
2004 Arizona Rangers Ariz 31 TEX Rk 1 1 1.71 4 4 0 0 0 0 21.0 15 6 4 0 6 20 0 6.4 0.0 2.6 8.6 1.00
  Frisco Tex 31 TEX AA 0 2 8.74 2 2 0 0 0 0 11.1 16 11 11 1 5 5 0 12.7 0.8 4.0 4.0 1.85
  Oklahoma PCL 31 TEX AAA 0 2 3.72 4 4 0 0 0 0 19.1 21 8 8 4 3 19 0 9.8 1.9 1.4 8.8 1.24
  Texas AL 31 TEX MLB 4 7 5.46 16 16 0 0 0 0 95.2 105 63 58 22 33 63 1 9.9 2.1 3.1 5.9 1.44
2005 Texas AL 32 TEX MLB 8 5 5.66 20 20 0 0 0 0 109.2 130 70 69 8 54 80 3 10.7 0.7 4.4 6.6 1.68
  San Diego NL 32 SD MLB 4 3 5.91 10 9 0 0 0 0 45.2 50 33 30 3 26 33 3 9.9 0.6 5.1 6.5 1.66
2006 San Diego NL 33 SD MLB 7 7 4.81 24 21 1 1 0 0 136.2 146 81 73 20 44 96 5 9.6 1.3 2.9 6.3 1.39
2007 New Orleans PCL 34 NYM AAA 4 4 5.57 9 9 0 0 0 0 51.2 64 34 32 9 16 49 2 11.1 1.6 2.8 8.5 1.55
  Round Rock PCL 34 HOU AAA 2 10 6.21 15 15 0 0 0 0 84.0 100 70 58 18 24 70 5 10.7 1.9 2.6 7.5 1.48
  NY Mets NL 34 NYM MLB 0 1 15.75 1 1 0 0 0 0 4.0 6 7 7 2 2 4 1 13.5 4.5 4.5 9.0 2.00
2008 LA Dodgers NL 35 LAD MLB 4 4 3.40 54 5 0 0 11 2 95.1 97 43 36 12 36 79 2 9.2 1.1 3.4 7.5 1.40
2009 Philadelphia NL 36 PHI MLB 3 3 4.43 45 7 0 0 6 0 83.1 84 43 41 5 33 73 2 9.1 0.5 3.6 7.9 1.40
Major League Totals - 16 Season(s) 120 95 4.35 423 287 10 3 26 2 1929.1 1807 1007 932 221 891 1663 68 8.4 1.0 4.2 7.8 1.40
Minor League Totals - 5 Season(s) 18 34 4.98 78 77 0 0 0 0 401.2 409 254 222 46 190 367 23 9.2 1.0 4.3 8.2 1.49


노모 히데오 미국 프로야구 통산 성적
(일본에서의 성적은 마이너리그 성적에 포함됐음)


Pitching Statistics
Year Team Lg Age Org Lvl W L ERA G GS CG SH GF SV IP H R ER HR BB SO WP H9 HR9 BB9 K9 WHIP
1990 Kinetsu Jap Pac 21 - Intl 18 8 2.91 29 27 21 2 0 235.0 167 76 109 287 6.4 --- 4.2 11.0 1.17
  Osaka Kintetsu Jap Pac 21 - Intl 18 8 2.91 29 27 21 0 0 0 235.0 0 0 76 0 109 287 0 0.0 0.0 4.2 11.0 0.46
1991 Kinetsu Jap Pac 22 - Intl 17 11 3.05 31 29 22 4 1 242.1 183 82 128 287 6.8 --- 4.8 10.7 1.28
  Osaka Kintetsu Jap Pac 22 - Intl 17 11 3.05 31 29 22 0 0 1 242.0 0 0 82 0 128 287 0 0.0 0.0 4.8 10.7 0.53
1992 Osaka Kintetsu Jap Pac 23 - Intl 18 8 2.65 30 29 17 0 0 0 217.0 0 0 64 0 117 228 0 0.0 0.0 4.9 9.5 0.54
  Kinetsu Jap Pac 23 - Intl 18 8 2.66 30 29 17 5 0 216.2 150 64 117 228 6.2 --- 4.9 9.5 1.23
1993 Osaka Kintetsu Jap Pac 24 - Intl 17 12 3.70 32 32 14 0 0 0 243.0 0 0 100 0 148 276 0 0.0 0.0 5.5 10.2 0.61
  Kinetsu Jap Pac 24 - Intl 17 12 3.70 32 32 14 2 0 243.1 201 100 148 276 7.4 --- 5.5 10.2 1.43
1994 Osaka Kintetsu Jap Pac 25 - Intl 8 7 3.63 17 17 6 0 0 0 114.0 0 0 46 0 86 126 0 0.0 0.0 6.8 9.9 0.75
  Kinetsu Jap Pac 25 - Intl 8 7 3.63 17 17 6 0 0 114.0 46 86 126 --- --- 6.8 9.9 ---
1995 Bakersfield Calif 26 - A+ 0 1 3.38 1 1 0 0 0 0 5.1 6 2 2 0 1 6 1 10.1 0.0 1.7 10.1 1.31
  LA Dodgers NL 26 LAD MLB 13 6 2.54 28 28 4 3 0 0 191.1 124 63 54 14 78 236 19 5.8 0.7 3.7 11.1 1.06
1996 LA Dodgers NL 27 LAD MLB 16 11 3.19 33 33 3 2 0 0 228.1 180 93 81 23 85 234 11 7.1 0.9 3.4 9.2 1.16
1997 LA Dodgers NL 28 LAD MLB 14 12 4.25 33 33 1 0 0 0 207.1 193 104 98 23 92 233 10 8.4 1.0 4.0 10.1 1.37
1998 LA Dodgers NL 29 LAD MLB 2 7 5.05 12 12 2 0 0 0 67.2 57 39 38 8 38 73 4 7.6 1.1 5.1 9.7 1.40
  NY Mets NL 29 NYM MLB 4 5 4.82 17 16 1 0 0 0 89.2 73 49 48 11 56 94 9 7.3 1.1 5.6 9.4 1.44
1999 Huntsville Sou 30 MIL AA 1 0 0.00 1 1 0 0 0 0 7.0 5 0 0 0 1 7 0 6.4 0.0 1.3 9.0 0.86
  Iowa PCL 30 CHC AAA 1 1 3.71 3 3 0 0 0 0 17.0 12 7 7 1 12 18 3 6.4 0.5 6.4 9.5 1.41
  Milwaukee NL 30 MIL MLB 12 8 4.54 28 28 0 0 0 0 176.1 173 96 89 27 78 161 10 8.8 1.4 4.0 8.2 1.42
2000 Detroit AL 31 DET MLB 8 12 4.74 32 31 1 0 0 0 190.0 191 102 100 31 89 181 16 9.0 1.5 4.2 8.6 1.47
2001 Boston AL 32 BOS MLB 13 10 4.50 33 33 2 2 0 0 198.0 171 105 99 26 96 220 6 7.8 1.2 4.4 10.0 1.35
2002 LA Dodgers NL 33 LAD MLB 16 6 3.39 34 34 0 0 0 0 220.1 189 92 83 26 101 193 6 7.7 1.1 4.1 7.9 1.32
2003 LA Dodgers NL 34 LAD MLB 16 13 3.09 33 33 2 2 0 0 218.1 175 82 75 24 98 177 11 7.2 1.0 4.0 7.3 1.25
2004 Las Vegas PCL 35 LAD AAA 1 1 5.71 4 4 0 0 0 0 17.1 22 11 11 4 8 25 1 11.4 2.1 4.2 13.0 1.73
  LA Dodgers NL 35 LAD MLB 4 11 8.25 18 18 0 0 0 0 84.0 105 77 77 19 42 54 3 11.3 2.0 4.5 5.8 1.75
2005 Columbus IL 36 NYY AAA 2 3 3.62 7 7 0 0 0 37.1 30 19 15 1 22 41 0 7.2 0.2 5.3 9.9 1.39
  Tampa Bay AL 36 TB MLB 5 8 7.24 19 19 0 0 0 0 100.2 127 82 81 16 51 59 3 11.4 1.4 4.6 5.3 1.77
2006 Charlotte IL 37 CHW AAA 0 0 3.00 1 1 0 0 0 0 3.0 2 4 1 0 2 3 0 6.0 0.0 6.0 9.0 1.33
2008 KC Royals AL 39 KC MLB 0 0 18.69 3 0 0 0 2 0 4.1 10 9 9 3 4 3 1 20.8 6.2 8.3 6.2 3.23
Major League Totals - 12 Season(s) 123 109 4.24 323 318 16 9 2 0 1976.1 1768 993 932 251 908 1918 109 8.1 1.1 4.1 8.7 1.35
Minor League Totals - 10 Season(s) 161 98 3.17 295 285 160 13 2 2189.1 772 1222 2508 --- --- 5.0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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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ramirang 2009/11/06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해서 박찬호를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열악한 한국프로야구를 감안하면 그를 선수로 보는 것 보다 케스트로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

    • BlogIcon ICCsports 밝은터 2009/11/06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생각도 드네요...그래도 박찬호의 등장이 한국 프로야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써보았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해요.

  2. 나그네 2009/11/06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서가는 생각에 박수를 보내며...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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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S Game 5: New York Yankees at Los Angeles Angels

뉴욕 양키스의 조 지라디 감독(1964년 10월14일 생)이 양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2008년 그는 유니폼 등번호로 27번을 선택했다. 27번은 깊은 의미가 있는 번호이다.

양키스의 통산 2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09 114(미국 기준) 양키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42패로 승리해 구단 역사상 27번째 챔피언이 됐다. 지라디 감독의 등번호 27번이 더욱 빛나는 날이었다.

양키스가 조 토리 감독을 떠나보낸 후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토리가 떠났으니 아메리칸리그 동부조는 레드삭스의 천하가 됐다. 지라디도 좋은 감독이지만 토리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뻐했다.

첫 시즌인 2008년에는 레드삭스 팬들의 말이 맞았다. 양키스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2009년 지라디는 양키스를 10359패로 이끌었고 결국에는 월드시리즈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라디는 어떤 인물인지 알아본다.

6th Annual Joe Torre Safe At Home Foundation Gala
<조 토리와 조 지라디>
 
5할 승률 밑에서 감독상

지라디는 2006년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플로리다 말린스의 신인 감독이었던 지라디는 말린스를 7884패로 이끌었다. 승률 5할도 안 되는 팀의 감독이 감독상을 받는 것은 정말로 특이한 일이었다.

투표를 했던 야구 기자단은 말린스가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라디의 지도력 덕분이라는 데 뜻을 함께했다. 말린스는 당해 11명의 신인으로 시즌을 시작했고 팀 연봉이 1,490만 달러에 불과했다. 혹시 숫자를 잘못 썼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팀 연봉이 1,490만 달러였다.

수퍼스타 한 명의 연봉도 안 되는 액수였다. 신인 선수들이 좌충우돌하며 시즌 초반 924, 1734패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감독 경질설이 나올 정도였는데 지라디는 이 팀을 이끌고 2006 99일 감격의 5할 승률을 기록하며 와일드 카드 경쟁에서 상위에 올랐다.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시즌이 끝날 무렵 시행된 기자단 투표에서 1위 표 18개를 받고 총점 111점으로 윌리 랜돌프 뉴욕 메츠 감독(81)을 제쳤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5할 승률도 기록하지 못한 팀의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지라디는 그 첫 테이프를 끊었다. 

Joe Girardi
Joe Girardi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말린스에서 해고된 후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그가 2006년 감독상을 받은 직후 해고된 일이다.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와 말싸움을 한 후 그는 1년 만에 물러났다.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기 중 로리아가 주심에게 야유를 보내자 주심은 지라디 감독에게 경고했고 이에 감독은 구단주에 욕설을 퍼부으며 '입닥치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것이 지라디가 해고된 이유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미 시즌 초반부터 부딪혔다고 하는데 지라디는 엄청나게 낮은 연봉으로 팀을 꾸려가려는 로리아 구단주에게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말린스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라디는 시카고 컵스 감독 자리가 공석이 돼 인터뷰를 했지만 결국 루 피넬라가 새 컵스 감독이 됐다.

이후 뉴욕 케이블 방송의 해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라디는 여러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양키스 감독이 되고자 모두 거절했다. , 양키스 감독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Joe Girardi at NYC MLB All Star Parade 2008
Joe Girardi at NYC MLB All Star Parade 2008 by chriki24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그를 원하는 팀은 많았다

지라디가 말린스를 떠난 후 그를 원하는 팀은 많았다. 그 중 한 팀이 LA 다저스였다. 다저스는 지라디가 양키스 감독직을 맡기 전까지 그와 협상을 했다. 양키스가 돈 매팅리를 감독으로 선정했다면 지라디는 다저스 감독이 됐을 것이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지라디와 다저스는 계속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라디와 네드 콜레티 다저스 단장은 20년 동안 친구로 지낸 사이다.

 다저스 외에도 감독을 해고하려고 했던 많은 구단이 지라디를 원했지만 그가 가장 바랐던 직장은 바로 양키스였다.

Joe Girardi
Joe Girardi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양키스 감독으로 적당?

지라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말린스에서 악조건 속에 좋은 성적을 냈고 과거 양키스의 벤치 코치로 있었던 점 그리고 양키스의 핵심선수들이 신인시절 지라디의 조언을 들었던 점 등이다. 이 밖에 선수시절 그가 포수였던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들은 유난히 인기가 높은데 이유는 포수 출신 지도자는 투수도 알고 타자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심판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심판의 심리도 잘 파악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포수다. 여러 면에서 포수 출신인 토리를 이을 가장 적당한 인물이 지라디였던 것이다.

Joe Girardi
Joe Girardi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똑똑하다? 성격이 불같다?

지라디는 똑똑한 감독으로 알려졌다. YES라는 뉴욕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해설을 맡았을 때 그는 지적인 발언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노스웨스턴대에서 산업 공학으로 학위를 받았던 지라디는 우등으로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러나 불 같은 성격이 문제였다. 구단주에게 욕설을 퍼부었을 정도면 성격이 불같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선수로서 컵스 시절에는 새미 소사와 대립의 각을 세운 바 있다. 소사가 클럽하우스에서 음악을 크게 틀자 "머리가 아프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가장 먼저 요청했던 인물이 지라디다. 당시 소사는 수퍼스타였기에 아무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으나 지라디가 앞장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Joe Girardi

평범한 선수 시절

지라디는 선수 시절 2000년에 단 한 번 올스타로 선정됐을 정도로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는 통산 타율이 267리였고 1277경기에 출전 홈런 36, 422타점을 기록한 선수였다. 지라디는 포수로서 진가를 나타낸 바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양키스의 주전 포수로서 그의 리더십은 빛이 났다. 당시 양키스는 3차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바 있다. 일리노이주 출신인 그는 시카고 컵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고 콜로라도, 양키스를 거쳐 2003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38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조 지라디 프로필]

▷키/몸무게: 5피트11인치/200파운드

▷투/: 우투 우타

▷생년월일: 1964 1014

▷출신교: 노스웨스턴

▷드래프트: 1986년 드래프트 5라운드

(시카고 컵스)

▷감독 경력: 3 (2006년 말린스, 2008-2009년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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