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엽기적인행동을모으면책한권쓸수있을정도의분량이라고한다. 타이콥은안타를많이때려내기위해방망이를쥔두손사이를벌려놓는 '스플릿핸드그립'을적용했는데이는확실히효과를봤다. 그런데 1925년 '홈런왕' 베이브루스에대한이야기가연일보도되고한기자가그에게 "루스의파워는정말대단하다"고칭찬하자승부욕이발동한그는한경기에서홈런 3개, 다음경기에서 2개를폭발시켰다. 홈런을못치는것이아니라안치는것임을간접적으로보여준대목이었다. 홈런 12개가콥의한시즌최다홈런기록이었기때문에그는확실히홈런타자는아니었다. 정확히말하자면홈런타자가되기를거부했다.
타이콥박물관의큐레이터인줄리리즈웨이는 "그는열정적이고승부욕이강했던것이지나쁜사람은아니었다"고설명했다. 그는 "타이콥헬스케어시스템, 타이콥교육재단등이탄생한것을보면알수있다"며 "실제타이콥은병원건립을위해 1949년 10만달러를내놓았다"고덧붙였다. 10만 달러는당시로는엄청난액수였다. 타이거스경기중계위원이었던어니하웰은 "1940년대에방송인으로서새내기였을때많은사람이 '타이콥은경험없는언론인과는인터뷰를하지않는다'고말했지만그는친절하게자신의집에서인터뷰에응했다"며비열한사람이아니었음을강조했다.
2001년 시카고 컵스 산하에는 최희섭 외에도 권윤민이라는 미래의 스타가 있었다. 포지션은 포수였고, 말을 참 맛깔라게 했던 선수였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권윤민 인터뷰 일자: 2001년 인터뷰 방법: 전화통화
최희섭 선수와 함께 미국 땅을 밟았을때까지만 해도 권윤민 선수(당시 23세)는 최 선수 못지 않는 강타자로 주목 받던 선수였다. 지난 시즌(2000년) 싱글A팀인 유진 에머럴드에서 초반 5할 대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던 권 선수는 한국에 있는 부친이 투병을 하게 되자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페이스를 잃기 시작했고 결국 고타율도 금세 추락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권윤민이 올시즌 부활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인하대 재학시절 14회 대륙간컵 야구대회 쿠바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에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 스타로 급부상 했던 권 선수는 아마추어 선수였을 당시부터 배팅 파워는 남부럽지 않은 선수였다.
권 선수의 한 측근은 "컵스와 계약을 했을 당시에는 최희섭과 타구의 비거리가 비슷했다"고 설명할 정도. 세계 최고의 야구 전문 통계사인 스태츠의 경우 '마이너리그 스카우팅 노트북 2001'에서 권 선수를 '올해 알아둬야 할 선수'로 꼽아 그 가능성을 인정한 바 있다.
▶올시즌 초반 2할2푼대의 타율로 약간 부진한 것 같은데요.
▷권윤민(이하 권): 별 걱정하지 않습니다. 방망이에 잘 맞고 있는데 운이 안따라 상대팀 수비에 잡힌 것이 많았습니다. 아직 미국에 온지 열흘밖에 되지 않아 성적은 큰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온지 열흘밖에 안됐나요?
▷권: 아.네. 아버님이 위암 말기이시기 때문에 한국에 다녀 왔습니다.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미국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권: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권 선수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선수였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권: 미국에서 건강 지키기가 더 쉽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동료나 친구들 만나면 술 한잔 해야 하고 하기 때문에 몸관리가 쉽지 않았죠. 이곳에서는 푹 잘 수 있고 휴식시간이 많아 건강 지키기가 쉽습니다. 동료들도 술을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에 건전하게 놀수 있고 이는 건강과도 직결됩니다.
▶팀 동료가 잘 해주나요?
▷권: 네. 유진에 있을 때부터 함께 뛰던 선수들이 지금 팀(랜싱 럭너츠)에서 같이 플레이를 하는데요, 6-7명 정도가 잘 해줍니다. 어디 놀러가고 그럴 때 항상 저를 데려가주고 또 제가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사주기도 하지요.
▶영어에는 불편이 없나요?
▷권: 지난해엔 영어 선생님이 교습을 해줬는데 올핸 교습이 없습니다. 지금은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지요. 알아듣는 것은 거의 알아듣고 말도 바디 랭기지와 아는 단어 모두 동원해서 하니 의사 소통에 큰 불편은 없습니다.
▶포수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투수와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할텐데. 투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마운드로 달려가서 뭐라고 대화를 나누나요.
▷권: 한국이건 미국이건 포수가 투수 마운드로 가서 하는 말은 농담입니다.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죠. 저도 동료들에게 농담을 건넵니다. 영어 잘 못하는 제가 마운드에서 열심히 말을 하면 그 자체가 재밌나 봅니다. 그래서 투수들이 긴장을 풀게 된다고 합니다.
▶최근들어 아시안 타자들이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권: 솔직히 저도 동양인 타자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타자는 어림없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미국에 와 보니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희섭 선수나 일본 타자들이 잘해낼 때 마다 저도 자신감이 붙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동양인 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는데 컵스의 스카우트가 했던 말을 대신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양인 포수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이 들면 왜 권윤민을 스카웃하겠는가. 그것도 거액을 들여가면서....’
▶최희섭 선수의 경우 홈런왕을 꿈꾸고 있던데 권윤민 선수는 어떤 목표가 있습니까.
▷권: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포수가 되는 것입니다. 즉, 수비가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엔 전문 포수가 없어서 제대로 포수 수업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프로선수들을 흉내내는 정도였고 대학교 때는 선배형들이 가르쳐준 것 정도가 배움이 전부였지요. 미국에 와서는 유진에 있을 때 감독님이 포수 출신이라 제대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타격 보다는 수비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지난해 컵스 마이너리그 포수중 도루 저지율 1위가 바로 저였습니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는 무엇인가요.
▶권윤민(이하 권): 최종목표는 물론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입니다. 수비가 좋다는 칭찬을 듣는 포수가 되고 싶습니다. 단기 목표는 한 게임, 한 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죠.
▷미국에서의 선수 생활에 어려운 점은 없나요.
▶권: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코치, 감독님들이 정말 잘해주세요. 한국 선수들은 트레이너가 시키는 것 다하고 자기 몫을 잘 해내니까 좋아하시죠. 미국인들이 자유분방한 것 같아도 성실하고 자신들을 잘 따라주는 사람을 좋아해 줍니다.
▷미국에서 배운 새로운 타법이 있다면
▶권: 한국에서는 투수들의 공이 90마일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선 마이너리그에서도 95마일, 96마일을 던지니까 처음에는 정말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코치님들이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빠른 공을 못 치니까 중심을 뒤에 두고 공을 치라고 지도해주셔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코치께서 한국 선수들은 스윙 궤도가 좋다고 칭찬을 해주시더라구요.
▷미국에 온 한국 출신 선수들과 만남의 기회는 있나요.
▶권: 병현이(김병현 선수)와는 국가 대표에서 2년 동안 함께 생활해 친한 편입니다. 박찬호 형 빼고는 모두 만나 봤습니다. 조진호, 최희섭, 백차승, 추신수 선수 등과 형님, 동생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병현 선수와 대화할 때는 제가 주로 듣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김병현 선수는 미국에 저 보다 먼저 온 선배이고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생활하니까 빅리그 생활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줍니다.
▷만약 야구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권: 평범한 사람이 됐을 겁니다. 대학 다니고 졸업해서 취업 문제로 고민하고 그랬지 않았을까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권: 텍사스 레인저스의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입니다. 제가 포수니까 메이저리그 게임을 보면 포수의 움직임을 주로 보는데 로드리게스 선수는 동작이나 기본자세가 너무 잘 되어 있어 본받으려고 합니다. 물론 방망이도 좋구요. 굳이 마이크 피아자 선수와 비교한다면 피아자는 수비에 신경을 안쓰는 포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마크 맥과이어의 이야기를 들은 후 그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언젠가 그는 “계약할 때 몇 백만 달러 더 받아 봤자 그 돈 죽을 때까지 다 못쓴다. 차라리 내게 줄 돈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떼우는 선수들을 위해 써달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아, 그리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코치로 활동중이신 이만수 코치님을 꼭 뵙고 싶습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
▶권: 메이저리그 진입 때까지는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만약 메이저리그에 못 간다면 은퇴한 후 결혼 할 생각입니다.
▷굉장히 달변가인데 은퇴 후 야구 해설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권: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말 잘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글쎄요, 제 꿈은 포수 전문 코치가 되는 것인데 기회만 주어진다면 야구 해설도 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시카고 팬들께 인사말을 해주세요.
▶권: 안녕하세요. 처음에 제가 컵스와 계약했을 때 시카고 교민들께서 왜 그 포수는 시카고로 오지 않냐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시카고에 있는 친구를 통해 들었습니다. 지금은 준비 기간입니다. 시카고에 가게 되면 한국 야구 선수의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에 쓰는 후기
1999년 11월 잠재력을 평가받아 시카고 컵스와 120만 달러에 계약한 권윤민은 2003년 오른쪽 어깨 인대 부상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그는 이후 MBC ESPN 해설자로 활동하다가 2007년 한국 프로야구 신인 지명에서 2차 5순위로 KIA 타이거즈의 지명됐다. 2008년까지 기아에서 뛰었고 2009년부터는 기아 타이거즈의 스카우트로 일을 하고 있다.
권윤민 프로필 직업 : 야구코치, 전 야구선수 출생일 : 1979년 1월 22일 소속 : 기아 타이거즈 스카우트 학력 : 동산고등학교, 인하대학교 기아 타이거즈 스카우트 (2009년)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09/11/04 22:24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뉴욕 양키스의 조 지라디 감독(1964년 10월14일 생)이 양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2008년 그는 유니폼 등번호로 27번을 선택했다. 27번은 깊은 의미가 있는 번호이다.
양키스의 통산 2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09년 11월4일(미국 기준) 양키스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4승2패로 승리해 구단 역사상 27번째 챔피언이 됐다. 지라디 감독의 등번호 27번이 더욱 빛나는 날이었다.
양키스가 조 토리 감독을 떠나보낸 후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토리가 떠났으니 아메리칸리그 동부조는 레드삭스의 천하가 됐다. 지라디도 좋은 감독이지만 토리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뻐했다.
첫 시즌인 2008년에는 레드삭스 팬들의 말이 맞았다. 양키스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2009년 지라디는 양키스를 103승59패로 이끌었고 결국에는 월드시리즈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라디는 어떤 인물인지 알아본다.
<조 토리와 조 지라디>
■5할 승률 밑에서 감독상
지라디는 2006년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플로리다 말린스의 신인 감독이었던 지라디는 말린스를 78승84패로 이끌었다. 승률 5할도 안 되는 팀의 감독이 감독상을 받는 것은 정말로 특이한 일이었다.
투표를 했던 야구 기자단은 말린스가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라디의 지도력 덕분이라는 데 뜻을 함께했다. 말린스는 당해 11명의 신인으로 시즌을 시작했고 팀 연봉이 1,490만 달러에 불과했다. 혹시 숫자를 잘못 썼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팀 연봉이 1,490만 달러였다.
수퍼스타 한 명의 연봉도 안 되는 액수였다. 신인 선수들이 좌충우돌하며 시즌 초반 9승24패, 17승34패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감독 경질설이 나올 정도였는데 지라디는 이 팀을 이끌고 2006년 9월9일 감격의 5할 승률을 기록하며 와일드 카드 경쟁에서 상위에 올랐다.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시즌이 끝날 무렵 시행된 기자단 투표에서 1위 표 18개를 받고 총점 111점으로 윌리 랜돌프 뉴욕 메츠 감독(81점)을 제쳤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5할 승률도 기록하지 못한 팀의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지라디는 그 첫 테이프를 끊었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그가 2006년 감독상을 받은 직후 해고된 일이다. 제프리 로리아 구단주와 말싸움을 한 후 그는 1년 만에 물러났다.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기 중 로리아가 주심에게 야유를 보내자 주심은 지라디 감독에게 경고했고 이에 감독은 구단주에 욕설을 퍼부으며 '입닥치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것이 지라디가 해고된 이유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미 시즌 초반부터 부딪혔다고 하는데 지라디는 엄청나게 낮은 연봉으로 팀을 꾸려가려는 로리아 구단주에게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말린스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라디는 시카고 컵스 감독 자리가 공석이 돼 인터뷰를 했지만 결국 루 피넬라가 새 컵스 감독이 됐다.
이후 뉴욕 케이블 방송의 해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라디는 여러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양키스 감독이 되고자 모두 거절했다. 즉, 양키스 감독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Joe Girardi at NYC MLB All Star Parade 2008 by chriki24
■ 그를 원하는 팀은 많았다
지라디가 말린스를 떠난 후 그를 원하는 팀은 많았다. 그 중 한 팀이 LA 다저스였다. 다저스는 지라디가 양키스 감독직을 맡기 전까지 그와 협상을 했다. 양키스가 돈 매팅리를 감독으로 선정했다면 지라디는 다저스 감독이 됐을 것이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지라디와 다저스는 계속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라디와 네드 콜레티 다저스 단장은 20년 동안 친구로 지낸 사이다.
다저스 외에도 감독을 해고하려고 했던 많은 구단이 지라디를 원했지만 그가 가장 바랐던 직장은 바로 양키스였다.
지라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말린스에서 악조건 속에 좋은 성적을 냈고 과거 양키스의 벤치 코치로 있었던 점 그리고 양키스의 핵심선수들이 신인시절 지라디의 조언을 들었던 점 등이다. 이 밖에 선수시절 그가 포수였던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들은 유난히 인기가 높은데 이유는 포수 출신 지도자는 투수도 알고 타자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심판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심판의 심리도 잘 파악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포수다. 여러 면에서 포수 출신인 토리를 이을 가장 적당한 인물이 지라디였던 것이다.
지라디는 똑똑한 감독으로 알려졌다. YES라는 뉴욕 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해설을 맡았을 때 그는 지적인 발언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노스웨스턴대에서 산업 공학으로 학위를 받았던 지라디는 우등으로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러나 불 같은 성격이 문제였다. 구단주에게 욕설을 퍼부었을 정도면 성격이 불같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선수로서 컵스 시절에는 새미 소사와 대립의 각을 세운 바 있다. 소사가 클럽하우스에서 음악을 크게 틀자 "머리가 아프니 볼륨을 줄여달라"고 가장 먼저 요청했던 인물이 지라디다. 당시 소사는 수퍼스타였기에 아무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으나 지라디가 앞장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 평범한 선수 시절
지라디는 선수 시절 2000년에 단 한 번 올스타로 선정됐을 정도로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는 통산 타율이 2할6푼7리였고 1277경기에 출전 홈런 36개, 422타점을 기록한 선수였다. 지라디는 포수로서 진가를 나타낸 바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양키스의 주전 포수로서 그의 리더십은 빛이 났다. 당시 양키스는 3차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바 있다. 일리노이주 출신인 그는 시카고 컵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고 콜로라도, 양키스를 거쳐 2003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38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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